그것을 '진실'이라 이름을 붙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정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힘에 근거한 것이라는 진실이 그 '진실'에 담기기 때문이다
여론이 조작되고, 검찰은 권력의 주구가 되며,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가 된다.
힘에 근거한 강자의 통치가 이다지도 천박할 수 있는가 하는 실상을 드러낸다.
아마도 공포정치를 펼 수 없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공포 정치가 가능했다면 이런 현실 인식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박정희를 이어 전두환이, 그를 이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던 나라이니
괴벨스의 추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며,
왕족의 화려한 휴가도 부활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거 지배는 강자의 지배였고, 한 번 강자로 등극한 세력은 그 지배를 영속화시키기 위해서
권력을 근거로
생산수단을 독점하였다.
언론은 큰 소리가 아니었고, 그것도 지배계층 내의 의사소통이었다.
권력의 행위는, 그것이 지배계층 내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면,
가렴주구조차도 왕의 통치였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의식을 근거로 쁘띠부르주아의 시민사회가 탄생했지만
그것이 세상에 자리잡은 '민주주의'라는 모습은
돈과 권력의 새로운 공생관계를 만들었고,
국가의 근대화 선전의 도구가 권력의 정당화 선전 도구로 변질되었으며,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세뇌와 무관심으로
제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리고 욕망과 권력이 춤을 출 때,
신성한 권력은 그 허구성을 노출시키며,
합리적 사유와 도덕적 기준을 무력화시킨다.
질서는 강자의 이익이 된다.
그리고 그 질서는 강자에서 소외된 소강자와 약자들에게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밑거름이 된다.
그래도 역사는 반복되었으며, 변화의 기대는 작은 이익과 민주주의의 실천적 귀차니즘으로 사산된다.
이 맥락에서 '그들'의 허물은
곧 '나'의 허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경계의 표석일 뿐,
면죄부는 아닌 것이다.
진리의 기강과 진실의 현실성이 무너질 때,
그래서 욕망이 권력의 이름으로 질서를 농락할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끊임없이 내몰린다.
나는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그것이 정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힘에 근거한 것이라는 진실이 그 '진실'에 담기기 때문이다
여론이 조작되고, 검찰은 권력의 주구가 되며,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가 된다.
힘에 근거한 강자의 통치가 이다지도 천박할 수 있는가 하는 실상을 드러낸다.
아마도 공포정치를 펼 수 없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공포 정치가 가능했다면 이런 현실 인식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박정희를 이어 전두환이, 그를 이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던 나라이니
괴벨스의 추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며,
왕족의 화려한 휴가도 부활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거 지배는 강자의 지배였고, 한 번 강자로 등극한 세력은 그 지배를 영속화시키기 위해서
권력을 근거로
생산수단을 독점하였다.
언론은 큰 소리가 아니었고, 그것도 지배계층 내의 의사소통이었다.
권력의 행위는, 그것이 지배계층 내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면,
가렴주구조차도 왕의 통치였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의식을 근거로 쁘띠부르주아의 시민사회가 탄생했지만
그것이 세상에 자리잡은 '민주주의'라는 모습은
돈과 권력의 새로운 공생관계를 만들었고,
국가의 근대화 선전의 도구가 권력의 정당화 선전 도구로 변질되었으며,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세뇌와 무관심으로
제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리고 욕망과 권력이 춤을 출 때,
신성한 권력은 그 허구성을 노출시키며,
합리적 사유와 도덕적 기준을 무력화시킨다.
질서는 강자의 이익이 된다.
그리고 그 질서는 강자에서 소외된 소강자와 약자들에게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밑거름이 된다.
그래도 역사는 반복되었으며, 변화의 기대는 작은 이익과 민주주의의 실천적 귀차니즘으로 사산된다.
이 맥락에서 '그들'의 허물은
곧 '나'의 허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경계의 표석일 뿐,
면죄부는 아닌 것이다.
진리의 기강과 진실의 현실성이 무너질 때,
그래서 욕망이 권력의 이름으로 질서를 농락할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끊임없이 내몰린다.
나는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