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가는, 익어가는 사랑에 대한 단상-남자들이 하는 '사랑'에 대한 잡담과 v-one의 "그런가봐요"라는 노래

2007. 5. 5. 14:47etc/사랑의 판타지

어제 아내와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옆에 대학생 2학년 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앉아서 새내기 여학생들과 어떻게 하면 썸씽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골몰하며 서로 서로 조언을 해 가면서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 커플이야 음식 먹으러 가서 별 잡담을 하지 않고 먹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뭐, 엿듯는 건 재밌기도 하지만.

한 여자와 지내기 시작한지 벌써 몇 해가 지난지라 그런 '남자들의 이야기'가 한참이나 어리게 생각되었다. 사실 한참이나 어린애들이기도 했지만. 뭐 그래도 나도 남자니까. 그들의 심정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의 모습이 사뭇 '동물적'이었다는 것이다. 아 저 친구들이 '숫컷'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순하게 '동물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로맨스',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요즘 20대 초반 아이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때 제법 연애를 했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새로이 후배들을 '낚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 정열적으로 이것저것을 논의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로맨스에 대한 환상, 그것이 '즐거움'이고 '쾌락'일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그래도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래서 '동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일단 '연애의 시작'과 '섹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통상 낚시로 비유되는 남성중심적 시각에서는 '고기를 잡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사후 관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동물이다. 반면 여자들은 다르다. '로맨스'는 그것이 시작되는 지점, 혹은 섹스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아니고, 그것이 '지켜지고', '가꾸어지고', 섹스의 경우라면 그 후의 평화(?)를 파트너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 그래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만들어졌겠지. 그 책은 제목만큼 내용이 재밌지는 않아서 표지와 몇 구절 읽은 게 전부이긴 한데, 어쨌든 서로 다른 '세계상' 혹은 '연애상'을 그리며 살고 있는 두 종류의 동물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현실은 냉혹하다. 아무리 판타지에 푹 빠져 있더라도, 총천연색으로 진행되는 '현실의 영상'은 영화와는 다르다. 좋을 것만 같은 연애도 파트너의 생각 알아맞추기, 거기에 부응하기, 또 상대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자신을 컨트롤하기, 뭐 그 전에 그런 자신의 습관 등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 에너지를 매개해서 만나는 파트너는 그렇지 않은 파트너에 비해서 집중도도 크고, 즐거움도 크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파트너이기도 하다. 괜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언젠가 들었던 '그런가봐요'가 떠올랐다. 이 노래는 가수가 대표하는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무뚝뚝한 남자의 자기 변명 같은 혹은  자기 위안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일성의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현실에서 꼬여만 가는 연애의 스트레스를 풀라는 것. 뭐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가사 내용(이 노래는 멜로디 자체보다 가사가 눈에 띤 노래였다)을 잘 보면, '이 남자의 이야기'는 '나르시스적 사랑'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르시스적 사랑'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기 판타지 속에서 그려지는 이성의 모델을 현실의 애인에게 투사해서 그 일치 여부로 사랑을 판단하는 자세로 만들어지는 사랑'으로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는 '로미오와 줄리엣'(현실감각 떨어지는 철부지들의 눈 먼 사랑, 삶의 내러티브가 없는 앙상한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예전에 써 본 글이 있다. →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그렇게 판단되는 이유는 일단 가사를 보자.

V one - 그런가봐요

고맙다는 그말 잘 못하는 사람
미안할 땐 괜히 더 화내는 사람
통화하다 먼저 끊는 사람
지난 사랑 얘길 늘 하는 사람
미리 해둔 약속 잘 어기는 사람
했던 얘기를 또 물어보는 사람
괜찮다고 걱정말라하면 그말 믿는 사람 그게 나래요.그녀가 말했죠 여자를 떠나 게 만드는 남자들을 아냐고
그 이유 다 갖춘사람 오- 다 나래요 그래서 날 떠나갔죠
그녀는 모르죠 나 얼마나 그녈 많이 사랑한지
그녈 위해선 아마 더한 버릇도 내가 다 고쳤을텐데
그녀는 모르죠 내 모자란 자존심에 말 못했던
수많은 얘기 눈으로만 말하던
아마 듣지도 못하고 가나봐요

말하지 않아도 내맘 아는 사람
약속에 늦어도 웃어주던 사람
작은 선물 뜻 없이 건네도 좋아하던 사람 그게 그녀죠
그녀는 말했죠 이별한 후에도
차가운 여자 맘을 아냐고
만날 때 후회 없었던 오- 그 이유라
미련조차 없다 했죠

그녀가 떠났죠 이렇게 날 미련 속에 남겨 두고
미안한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후회 뿐인 나를 두고
그녀는 떠났죠 다른 사랑 이래서는 안된다며
내 마지막은 그녀였단 얘기를 끝내 듣고도
모른체 가나봐요

그녀는 모르죠 나 얼마나 그녈 많이 사랑한지
그녈 위해선 아마 더한 버릇도 내가 다 고쳤을텐데
그녀는 모르죠 내 모자란 자존심에 말못했던
수많은 얘기 눈으로만 말하던
아마 듣지도 못하고 가나봐요
나의 사랑이 날 두고 떠나 가요-

사랑한다 말은 하지 않고 눈빛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하는 이 남자의 이야기. 낯설지 않다. 필자도 이런 이야기를 지금의 아내에게 한 적이 있었다. -_-; 노래로 만들어 졌으니 뭇 남성들의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여성들의 욕망을 충분히 신경쓰지 않는 남자들에게서 반복되는 레퍼토리일 것 같다. <여자가 원하는 것What women want>(맬 깁슨, 핼런 헌트 주연, 허리웃 영화, 2000)에서 처럼 여자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문제는 쉽겠지만 그런 인간이 있으랴.

그래서 여성 파트너에게서 저런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를 파악해야 한다. 혹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리고 파트너쉽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면 남자가 변해야 한다. (통상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변하는 남자는 없다. 이별의 쓴 맛을 보고 나서야 후회하며 신경쓰게 된다. 다음 파트너에게서 혹은 이별했다가 다시 재회해서 '변화'가 적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후자였다..-_-; 그래도 변했으니 어디야)여기에서부터 정말 '현실적 사랑'의 고단함이 펼쳐진다. 영화 속 로맨스를 실체화시키려면 영화의 장면 속에 보이지 않는 '사전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콩깍지 쓴 사람)보다는 '사랑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상적인 그리고 판타지의 '로맨스'라는 설계도를 놓고, 현재의 파트너와의 관계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서 설계도에 맞추는 작업, 혹은 파트너와의 협의를 통해서 설계도를 변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건 '음악이 깔리고', '아름다운 햇빛이 비치는' 영화 속 장면일 수 없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관찰을 하고 많이 소통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파트너의 표현(표정, 제스쳐, 말투, 음성의 고저 등)에 담겨 있는 감정을 파악할 수는 없다. 엄연히 '훈련'의 영역이다. 그게 또 100%는 아닌지라 대화를 통해서 서로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관심과 대화,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만들어지는 사랑', '익어가는 사랑'을 하는 1차적인 방법이다.

시작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겠지만,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적 본능의 이끌림에 따라서 시작되는 수컷들의 '발정기'의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부단히 그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인간의 고단한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동물적 본능'에 따르기만 해서 그래서 결국 '동물'이기만 한 존재로 우리를 남겨 놓지 않고, 우리에게 '인간'이라는 상상적 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모두 인간이지만 당대의 문화적 가면의 '정수'를 맛보는 그 생물학적 인간이 바로 정의 그대로의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위적 가면'이 아닌 그저 보다 좋은, 즐거운, 행복한 '가면'이다. 물론 쉽게 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르시즘적 사랑을 넘어서 판타지를 제작하는 인간의 현실-판타지적 사랑을 생각하면서 잡담을 늘어 놓았지만,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지 않고 늘 행복한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관계의 지속은 늘 관심과 대화가 필요하다. 편한 게 어딨겠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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