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에 대해서 (2004/12/10)

2007. 2. 21. 18:50etc/삶에 관한 단상

익명성은 찌꺼기를 드러낸다. 그것이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를 넘어서 '욕'은 나름대로 양면의 칼이다. 심리적 위안을 주며, 그러한 분출을 허용하는 측면에서 극단의 갈등에 이르는 것을 막아준다. 후자의 유용성은 아무래도 '탈권력'적인 장이 주는 체제 옹호적 성격이다. 공개된 게시판과 익명 게시판. 그러한 이분법은 이미 구성되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자로의 구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적절하지 못한 방법이지만 그것이 '틀'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것은 '익명'의 현대를 살아가는 참으로 유용한 합리화 발언이다. 물론 후자의 양가성은 결과적으로 + 효과인지 - 효과인지(글을 쓰는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자유'스러움이 주어진 것에 의해서 그 가치가 한껏 미화되기에는 무언가 빠진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익명성'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인데, 그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위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용되는 '맥락'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익명성'을 표면적인 권력의 폭력성이 보여주는 데에 대한 반작용의 도구로 사용되는 면이 당연히 담을 수밖에 없는 '폭력'의 재생산 문제이다. '익명'의 안전망 뒤에서 '무한 허용'의 세계와 '무한 자유'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처럼 아늑하게 느낀다는 것은 자신이 '폭력화'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최면효과를 지닌다. 자신의 폭력은 얼마나 컨트롤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이 구도는 그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이미 지나치게 한쪽으로 달려왔기 때문인데, 지각 있는 개인의 판단에 따른 문제가 될 것이다. '건전성'이라는 거시기한 말을 하기는 싫지만, 부당한 폭력에 또한 역시 폭력적인 방식의 분출이라는 것은 그것의 기능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러한 폭력을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의 '됨'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다.

긴장감 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칫 이와 같은 작은 힘을 누림에도 단순한 '찌꺼기'를 생산하는데 그치게 된다. 심리적 배출 장소로 보다는 보다 악랄하게 여겨지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이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기비판이 부족한 풍토이다. 본인도 자유롭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