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manufacturing love

2008. 10. 23. 01:48etc/사랑의 판타지

부끄럽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늘 부끄럽다. 아니 닭살스럽다. 사랑의 고백은 낯 뜨거운 이야기 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 같은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게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모든 걸 바칠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상대자를 만나기도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 준 영화들도 많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랑의 파트너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는 사랑을 누구나 자신이 보았던 혹은 들었던 '완벽한 러브 스토리'로 포장하고 싶어한다. 아니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에게 혹은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사랑을 이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을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열정이 깃들어 있고 감동이 숨어 있으며 행복의 낙원으로 조명되는 이성애의 자리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시니컬한 주인공이 '단순한 화학작용'이라고, 이미 그 이전에 냉철한 합리주의자들에 의해서 종족 번식의 의지로 폄하되었듯이 '동물로서의 인간'을 보여주는 영역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을 말하게 하는 자리는 단지 섹스, 즉 종족 번식 행위만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데에 있다. 물론 섹스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많은 남녀들에게 섹스 자체도 단지 종족 번식 행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르가즘이 단순히 일정한 몸짓의 결과가 아니고 뇌의 인식과 반응의 산물이라고 알려져 있듯이 '사랑'은 더더군다나 지극히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상상적인 행위이다. 때문에 사랑에서 언어의 힘은 상당히 크다.

언어는 미래를 바꾸는 첫 발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유와 일치된다. 사유는 언어에 근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언어와 사유는 외부로 노출되느냐의 차이가 있다(물론 발화와 사유를 이 정도의 차이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데, 같은 발화라 할지라도 어떤 태도로 어떤 톤으로 누가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만 큰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시인이 될 필요가 있다. 물론 거창한 시인은 아니다. 닭살 전문 시인이다. 노골적이거나 은은하거나 문체가 화려하거나 수수하다 못해 민망하거나 상관 없다. 진심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자기 마음을 노래하는 민망한 음유시인이면 충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의 대사를 종종 인용하곤 하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인에게 적절한 표현을 하지 못해서 곤란을 겪는다. 마음에도 없는 딴 소리를 늘어 놓다가 꼭 산통을 깬다. 그리고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쓴다. 그 변화를 기다려 주는 파트너를 만났다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행운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행운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혹은 그녀가 운명의 파트너가 아니라고 자기 위안을 삼게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그'와 '그녀'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서는...-_-; 필자 같은 종자는 '비일비재'라는 말은 어불성설..;;

하나의 예제, 이런 말을 떠올려 본다.

동물적으로 포만감 속에서 평안이 찾아 들 때, 삶의 안락함이 느껴지고 무언가 행복을 상상하는 그 순간에, 바로 '당신'이 생각 났어..라는 말;;;;

이런 닭살스러운 말이 선물일 수 있다는 발견.. すげすぎます!

다만 언어적 표현은 유효기간이 있으며, 그 유효기간은 일종의 '언어 마법'의 한계시간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결정적으로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계기는 그러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동에 달려 있다. '사랑'의 판타지에 대해서 파트너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 스토리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한다. 행위의 표현이 덧붙여지면.. 마..마에스트로? ^^;

*일반적 주의*

에로티시즘적, 나르시즘적, 메저키스트적 중독과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필자의 관념적 선호에 따른 구분이긴 하지만 '사랑'이 긍정될 수 있는 경우는 '적절한 생식욕+사회적 책임+양자의 행복'이라는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파트너에게 무책임한 경우는 배려와 관심의 부족으로 '양자의 행복' 요소를 결락시키는 것으로 어떤 긍정적 결과, '사랑'이라는 고차원적 인간의 판타지 수행 행위를 통한 생의 의지의 고양은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이런 버전이라면...

별-미워도 좋아

이 노래에서 문제의 가사는 "내게 무슨 짓을 해도(?) 너를 사랑하..." 이런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사랑 때문에 망하기 딱 좋다. 오래 참고 온유하고 퍼 주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자기 핏줄에 대한 것이고, 연인에 대해서 그런 상상을 하면, 상당히 위험해 진다.

영화 같은 사랑이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고 봐야 한다. 영화 말고는 본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가끔 해외 토픽으로 나오는 예들은 꼭 파트너 누가 되게 아픈 경우다. 참 고약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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