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2005/01/12)

2007. 2. 22. 23:33etc/삶에 관한 단상

삶은 언제나 '현재'이다. 그 이야기는 바꾸어 이야기하면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라거나 '과거'가 우리들과 관계맺는 방식과는 다른 '날 것'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혼돈의 때'로 인도하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와 관계된 '미래'와 관계된 현재가 아니고서는 '현재'는 동물적 본능의 생존장에 불과하다. '과거'는 기억과 함께 현재에 존재하고 '미래'는 소망과 함께 현재에 존재한다. 소망과 관계되는 '미래'라는 시간에 주목 할 때, 우리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꿈'이란 것, 잘 때 꾸는 것이 아닌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마련하는 노력이라고 할 때, 그것은 시간의 지도가 된다. 현재의 순간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따른 제한 안에서 구상되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날 것으로 주어지는 현재의 도전이 제공하는 '변화의 폭'을 안고 있는 것이기에 또한 유동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그러한 변화를 수용해 내고자 하는 인간적 대응이다. 이 대응은 그래서 '생존의지'에 준하는 것이다.

때문에 '꿈을 꾼다'는 것은 살아 가는 '방향타'가 된다. '살아나가는 모형'에 끊임없이 비추어 빚어내는 '자기 프로그래밍'인 것인데, 그 확인작업은 '꿈을 꾸는' 행위가 된다. 그 행위는 '자기 프로그래밍'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가? 잘 하고 있는가? 얼마나 남았나? 무엇을 해야하는가? 제법 시간의 낭비처럼 비추어지는 '망상'의 수준에 맴도는 듯 하지만, 이미 다음 선택의 '패'를 만지작 거리며 삶에 베팅하는 담력을 키우는 시간이다.

내게 이런 의미로 다가오는 '꿈을 꾸는 시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삶의 밀도를 재조정하게 만든다.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를 다짐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 수순이 준비되기 마련이다. 얼마나 행동하고 있는가? 꿈이 항시 '망상'의 차원으로 도태되는 위험을 담지하고 있는 것은 행위자의 나태에 따른 것이다. 이는 필자에게 경험적 진실이다. 머릿 속으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한 '미래의 지도'는 역시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거짓말'로 남겨질 따름이다. 오늘의 삶에 비로소 채찍질을 더하게 하는 것은 '꿈의 역학(Dynamics of Dreaming)'이 선사하는 삶의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