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천국과 지옥

2015. 5. 13. 07:02etc/사랑의 판타지


감각이 아닌 상상

 

사랑, 두 개의 극을 가진 감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 실상 사랑은 감각이나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반응이다.

사랑의 감각의 출처를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감각으로 위치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종족 번식의 본능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라는 인간적인 주장은 지극히 온당하다. 종족 번식의 본능에서 출발하지만 분명 다른 동물과 다른 행동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게 아닌 개념적 행동이다.

롤랑 바르트의 간판 명제, ‘신화는 빠롤이다는 여기에도 해당된다.

 

사랑은 빠롤이다.”

 

사랑은 일종의 담론이다. 그렇다고 언어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기호학적 체계로서 분별하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 자체로부터 얻는 정보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상상이 개입된 2차적 추상 활동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명적, 육체적, 정신적, 정열적, 친밀한 사랑이 존재한다. 다수에 의해서 공감할 수 있는 형태의 사랑의 내러티브는 다양하다. 하나의 단일한 사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신비의 베일과 같은 것으로 가려진 채 그 실체는 감추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그/그녀의 연인처럼 오로지 신비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것만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두 개의 심연

 

사랑의 내러티브에 존재하는 두 개의 극은 너무나 인간적인 관계의 역학을 보여준다. 아니 우주 삼라만상의 물리적 법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의 대립. 종족의 번식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선택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적 선택이다. 선택과 선택이 만나지 않는 이상 발생할 수 없다. 다른 하나의 선택을 배제하자면, 물론 폭력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도 관계라는 면에서 다를 것은 없다. 어느 하나의 선택이 극단에 놓인 관계적 선택일 뿐이다.

번식 의지를 가진 수컷이 최초에 선택을 시도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적합한 반응을 보일 암컷의 선택과 만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은 실패하게 된다.

 

사랑은 yes or no 게임의 의미를 좀 더 극단적인 수준으로 상승 혹은 추락시킨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것이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이다. 이 두 대립적 이미지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말들 속에 담겨 있다.


 

Love can take us to heaven or hell, but it always takes us somewhere. Therefore, be prepared to travel... 

 - Paulo Coelho



I'll follow you and make a Heaven out of Hell, and I'll die by your hand which I love so well.

"Mid Summer Nights Dream" by Shakespeare.

 

Even heaven is hell without you.

??

 

O, What a heaven is love, O, what a hell!

Thomas Dekker

 

천국, 그것은 내가 바친 사랑이, 그 선택된 연인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사랑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옥, 그것은 내가 바친 사랑이, 그 선택된 연인에게 거부되면서 사랑의 관계가 거절되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에만 사랑의 감정이 깃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후자에서도 짝사랑이라 부르며 사랑의 감정이 나오고 경험되고 표현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중적 존재

 

그렇기에 관계의 대상자에게도 사랑의 양극성은 나타난다. /그녀는 구원자이자 파괴자이다. 천상의 인도자이자 지옥의 징벌자이다.

 

You're my devil, you're my angel, you're my heaven, you're my hell!

??

 

물론 이러한 양극성을 극복한 수준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다른 천상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 뿐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자는 이 관계에서 그래서 약자로 불린다. /그녀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녀는 선택을 기다리는자, 혹은 관계 속에서 더 사랑하는 자에게 신적 존재로 변형된다. 여신/신의 모습으로 현현하게 된다. 거절 혹은 관계의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연인의 마스크는 바로 악마의 모습으로 변형된다.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와 같이 하는 시기, 바로 사랑하는 때.

 

연인, 트릭스터, 인간이 창조한 대상

 

창조는 상상이다. 손 쉽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신비의 체험, 그것이 사랑이다. 성공률은 다르겠지만 높은 빈도로 지옥을 비교적 낮은 빈도로 천국을 맛보게 되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이 본능에서 시작했지만 사유하는 뇌에서 완성된다.

 

왜 연인이 성자이자 악인인가? 아니 왜 그런 극단적 이미지가 투사될 수 있는가? 왜 연인은 그런 성스러운 존재’(긍정적 성스러움과 부정적 성스러움이 불안정하게 변형되는)인가?

 

아마 여기에는 보다 근원적 설명이 요구될 것이다.

 

다른 어떤 관계에 비해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세계를 변형시킨다. 그 반대 방향에서 관계에 참여하는 주체의 존재를 변형시킨다. 그렇게 그것이 일종의 종교적 체험의 일종인 것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 좀 더 깊은 아니 좀 더 근원적인 인식-경험의 작용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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