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우화시 하나 (과거 블, 2004/11/22)

2007. 2. 21. 14:46글읽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 외,『중세에 살기(Vivre au Moyen Âge)』, 최애리 역, 동문선, 2000, pp. 84-86.

Vivre au Moyen Âge(Éditions Tallandier, 1998)를 원본으로 삼고 있다.

역자에 따르면 제목을 "서양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해야 더 맞는다고 한다. 물론 제목 그 자체를 번역하면 "중세에 살기"라는 표현이 맞지만 그 내용에 비추면 전자가 타당하다고 한다. 어둡기만 하게 그려진(르네상스 시기에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중세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인간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중세의 우화시가 있어 옮겨 본다. 2장 신앙과 성직자의 8절 우화시에 대한 내용이다.



한 학생이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생계가 막연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주머니에는 동전 한 닢 없이 걸어서 가야만 했다. 저녁이 되자 허기가 진 그는 한 농가에 묵어 갈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집주


인 여자는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간청하다가 한 하인이 포도주를 가져 오는 것을


, 또 하녀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과자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아 부인, 얼마나 좋을까요." 학생이 말했다.
"당신 집에 묵어 갈 수만 있다면요!"
그러나 그녀는 그의 코 앞에서 문을 탁 닫아 버렸다. 학생은 근처를 헤매다가 한 사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사제는)검정 외투에 싸여
바로 그의 곁을 지나서"
그가 푸대접을 받았던 집으로 들어갔다. 학생이 신세 한탄을 하고 있노라니,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그를 불러 사정 얘기를 듣고는, 그가 그처럼 푸대접을 당한 데 대해 분개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문간으로 갔고, 농부는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의 아내는 당황하여 사제를 고방에 숨기고, 그를 위해 준비했던 맛난 음식들을 감춘 다음 문을 열러 나갔다. 농부는 그의 손님에게 앉으라고 권한 다음, 먹을 것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없다고, 밀가루를 가지러 방앗간에 갔던 농부 자신이 잘 알 것 아니냐고 되받았다. 그러자 순박한 농부는 젊은 학생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였다. 방해꾼들을 어서 몰아내고 싶었던 아내는 하녀에게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그들이 먹을 빵을 좀 만들어 줘/먹고 나면 자러 가겠지!"
음식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면서, 집주인은 손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였다. "당신처럼 배운 것이 많은 젊은 사람은 얘깃거리도 많을 것 아니오"라고 농부는 말했다.
"그러니 재미난 이야기나 해주구려/아니면 노래나 신기한 일이나."
저는 노래도 신기한 이야기도 모릅니다, 하고 학생이 말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제가 최근에 겪은 무서운 일을 들려 드리지요. 그리고 나서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가 주인 여자를 점점 더 불안하게 한 나머지, 모두들 빵말고 다른 것도 먹게 되었다. 방금 숲에서 나오던 길에 저는 돼지떼를 만났답니다. 하지만 목동이 없었어요. 그런데 커다란 늑대가 돼지 한 마리에 달려들어 물고 가더군요.
"그 고기는 당신 하녀가
방금 단지에서 꺼냈던
고기만큼이나 맛있는 것이었지요."
남편은 놀라고, 아내는 고기를 사놓았노라고 실토하였다. 남편은 손님에게 대접할 것이 생겨서 좋아하고, 손님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늑대는 돼지를 뜯어먹기 시작했고, 피가 뚝뚝 떨어졌어요.
"그건 오늘 저녁 제가 문간에 있었을 때
하인이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간
그 포도주만큼이나 새빨겠지요."
그러자 농부는 아내에게 "우리 집에 포도주가 있던가?"하고 물었다.
"그럼요, 있구말구요. 많이 있지요.
저는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위한답니다."
학생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늑대가 붙잡은 것을 놓게 끔 뭔가 던질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돌멩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정말이지 여기 하녀가 준비해 둔 과자도
그 돌멩이보다는 컸을걸요."
주인 여자는 점점 더 난처해졌지만, 남편은 대만족이었다. 그는 손님에게 식사다운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저는 돌멩이를 주워 늑대에게 던지려 했어요, 하고 학생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자 그놈이 절 노려보기 시작했어요.
"마치 사제님이 저기 고방에서
창문으로 저를 노려보는 것처럼요."
그러자 남편은 벌떡 일어나 사제에게 달려들어서는 외투며 웃옷이며 제의를 강제로 벗겨서는, 학생에게 이야기 잘한 상으로 주어 버렸다. 학생에게는 이 옷들이 횡재가 될 터인즉, "극는 후한 상을 받았고/사제는 큰 수치를 당했다."


이 이야기는 <데카메론>이라는 보카치오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몇 편 더 있다. 중세에도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