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의 길', 초딩들에게 직업 소개 강의를 해 보다

2017. 2. 13. 09:30etc/교육문제

뭐 잘 되었을 리 만무하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을 것 같지가 않다. 눈높이에 맞춘 것도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강의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어느 여학생에게 물어 보았을 때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재밌었니?


아뇨, 재미없었어요.


가슴 아프고, 낯 뜨겁고 뭐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별 기대가 없었으니. 사실 자신의 눈 높이 조절 실패를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자존감 손상을 야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애초 거절했으면 되었을 일이지만.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그 아이가 학교 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예가 있고, 그 일로 학교 선생님과 충돌이 있었지만 선생님과 교장의 노력으로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 때, 부모는 '학교에 적극적 참여'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나중에 후회가 밀려오더라도 말이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하니까.


학교에서 특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아마 직업인 부모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그런 것을 기획했다. 학교는 부모들에게 '신청서'라는 형식의 협조 공문을 발송했고, 나는 기꺼이 그 프로그램에 응했다.


행사 당일 학교에 가 보니 해당 프로그램에 응한 학부모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개 반에 4명의 학부모가 신청한 상황이었고, 특별히 한 학부모를 더 섭외하여 5명의 학부모가 최종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부모를 이용한 진로 체험 프로그램은 사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지적하는 다음의 글을 보라.

""부모 직업체험 왜 하나요?"…'흙수저' 부모는 웁니다"]




우리 아이의 반에서 '인문학 연구자의 길'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일단 이야기하려는 나도 깝깝한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요새 부모들이 이런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충 알고 있을 뿐더러, 아이들이 '학자의 길' 따위를 고려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아도 그렇다. 버스운전기사, 파일럿 등이 내 어릴 적 '직업'을 대상으로 한 꿈이었으니 말이다. '과학자'는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인문학자' 그 중에서도 '종교학자'는 결코 아이들의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다. 그런 상황은 아마 고등학생, 심지어는 인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인문학 연구자의 길'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는 아마도 '학문활동의 길' 정도로 넓어졌던 것 같다.


내가 왜 그 자리에 서서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종교학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긴 했다. 최대한 열심히 짜낸 것이 신, 수퍼히어로, 상상의 동물 같은 존재, 사람들이 그 존재를 믿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한 그러한 대상에 대한 믿음, 실천, 의미 등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중언부언 떠들긴 했다. 떠들고 나서 느낀 거지만, 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지 하고 적어 간 것이 있었지만, 그대로 진행이 되진 않았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중구난방으로 답변을 하고, 거기에 맞추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였다.


학자, 연구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호기심, 문제의식 같은 것을 핵심적인 것으로 설명해 주었다. 사실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하면서,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생각되는 것이 '문제의식'이었다. 무언가 해명하고 싶은 게 있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그렇게 알아낸 것을 글로 발표하고. 이게 어느 분야에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는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생각된다. 그 외에는 해당 분야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 수학능력(문해력, 표현력-발표와 글쓰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초중고 시절의 학업성정이 중요할 수는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그런 코스를 밟은 사람들은 '학자'로서 상당한 결격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정답 찾기'에 특화된 사람들은 표준적인 문제의식은 가질 수 있지만 자신 만의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그런 사람들이 학자 노릇 한답시고 떠드는 걸 보면, 아 저 사람은 학원강사를 하면 딱인데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곤 하니 말이다.


어쨌든 초딩 아이들에게 그래서 강조한 것은 성적보다도 자신이 어디에 호기심을 갖는지, 어디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그 분야에 본인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구자의 덕목 중 호기심이 제1 자질이다


결국에는 '학자의 길'이기보다는 '진로 선택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 그 일을 할 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연한 일반론으로 귀결된 감이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라는 게 전달이 되었을지는 앞의 문답으로 그 한계가 자명했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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