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부모가 ‘나쁜’ 아이를 만드나? 어쨌든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있다.

2016. 12. 25. 08:07etc/교육문제

나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다. 조금 과장해서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의 감정을 상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지만 방법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같은 반 아이들이 나쁜가? 현재 교육제도가 나쁜가? 선생님이 나쁜가? 아이의 기질적인 문제인가? 이 질문들에 제대로 ‘예, 아니오’로 선명하게 답하기 어렵다, 현실은. 



현재 교육제도, 정말 문제가 많다. 그런데 또 잘 적응해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이런 건 어떤 일반적 기준을 세우고 접근하게 되면, 침대에 사람 다리를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범죄를 재현하는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이거 당장 대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방법이라 쉽지 않다. 그걸 감수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 그리고 자질과 품성을 지니고 있다면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 아이들의 문제? 선생의 문제? 이것도 별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 심각한 폭력 행위를 저지른 아이나 비위를 저지른 선생이라면 공적 프로세스를 통해서 배제할 길이 있겠지만, 보통 학교 생활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나 선생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상성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교우관계 문제는 문제가 되는 아이의 사교 스킬 상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결국 ‘아이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소한 뭘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걸 만들 수 있다. 효과는, 단기적 결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검증하기 어렵지만.


아이 성정의 문제, 타인과의 관계 설정의 문제, 대화 기술의 문제, 타인의 감정을 읽는 기술의 부족 문제, 정서적 불안 문제 등등. 고민해야 할 것은 많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도 좋겠지만 이 부분에서도 비용과 시간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니. 학교나 지자체를 이용한 저비용의 방법도 있는데, 그것을 몇 차례 이용해 보았지만 효과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집중적 관리가 쉽지 않은 시스템인 것 같다.


어쨌든 교육 및 상담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다보면 문제의 화살표가 부모에게로 돌려진다. 그 화살표는 꼭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기분 나쁜 부분은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고지식하거나 말이 많거나 권위적인 선생인 경우이다. 가령 내 경우, 반 아이의 담임, 그 학교의 교장.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본인들은 전문가이고 부모는 전문가의 견해에 토달지 말고 따라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나도 콧대 높은 부모이긴 하다. 먹물 근성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진단도 100% 정답일지 의심스럽다. 일단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에서 그들이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직장인 느낌이 교육자라는 느낌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상담 선생님들의 경우는 비교적 그 부분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불쾌한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돌팔이 같은 사람이 그런 경우에는 짜증이 안 날 수는 없다.



기분 나쁜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돌아 볼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 초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기억 남는 장면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암살교실》 시즌2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조만간 GTO와 묶어서 일본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아니메’의 한계를 끄적일 기회에 풀어내도록 하고, ‘학원물’+‘폭력물(간혹 전쟁물)’ 형태의 이야기인데, 학교에서 탈락자 취급을 받는 아이들의 갱생적 성장을 다룬 ‘학원성장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은 관련 정보를 여기서)


9화에서 주인공격 캐릭, 남자중딩인데 여자중딩처럼 보이는 아이의 엄마가 온갖 콤플렉스로 아이를 옥죄며 장래 진로를 강요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 만화답게 엄마의 ‘강압할 때의 심리상태’는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좀비나 괴물이라 보일 정도의 비주얼이다. 애니의 설정 탓에 엄마의 강요 내용이 좀 낯설지만 형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로드맵을 그려 놓고 그것을 제대로 완수하기를 아이에게 요구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아이가 다른 길을 가고 싶어하면 부모는 분노하며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를 시전하면서 일장 연설 혹은 폭력이 행사되곤 하는 교육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사육’의 모습이다.



이 사안은 비교적 판단이 용이하다. 저렇게 아이에게 강요해서야 쓰나.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아이와 부딪히는 장면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면, 형태상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식은땀이 나게 된다.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화를 내거나 매를 드는 경우, 백이면 백 모두 아이의 요구/욕망을 무시하고 부모인 나의 기준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경우이다.


장난감 정리해라, 휴지를 썼으면 휴지통에 버려라, 밥은 제때 먹어라, 밥을 먹었으면 바로 양치를 해라, 형제끼리 싸우지 마라, 동생한테 양보 좀 해라, 형한테 함부로 대하지 마라, 10시가 되면 잠을 자야한다, 학교에 지각하지 마라 등등. 물론 건전한 행위 목록과 문제가 되는 행위 목록을 아이가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전문가들도 그 필요성을 이야기하니까.


전문가들은 이때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문제가 되는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도 해 주고 좋은 행동이 무엇인지 잘 안내해 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확실히 아이를 제압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럴 때 폭력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류의 프로그램을 보면 늘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 지점에서는 ‘내가 나로 사는’ 삶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나의 인생관, 익숙한 삶의 태도나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 나는 이 정도만 아이들하고 놀아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와 상담 선생님 그리고 아이 엄마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혼자놀기에 익숙해져 버린 내게는 일주일 중 하루를 온전히 할애하는 가족놀이(여행, 공원놀이 등등)는 또 하나의 ‘집안의 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의 나은 삶을 위해서 이러한 변화를 감수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 새 별로 나아진 삶의 태도나 방법을 가지지 못한 채, 아이 앞의 ‘죄인’, 아내 앞의 ‘죄인’, 상담 선생 앞의 ‘죄인’으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누구라도 폭발하게 된다. 죽도 밥도 안 되지. 부모로서 자신의 ‘다크 사이드’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자존감까지 완전히 짓밟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도 쉽게 바뀌지 않지만 부모인 자신도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인정하고, 차분히 대책을 고민해 보는 것이 낫다.



우리 집에 모여 있는 괴물들은 데빌 마스크를 종종 시전하면서 대규모 전쟁도 벌이고 평화회담도 하고 그런다. 최근에는 정기모임, 이름하야 ‘우리집 촛불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차분히 촛불을 켜 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자리다.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 모임이 언제쯤 부모로서의 나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변화를 가져다줄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괴물이 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니까(촛불모임 중에는 휴전이니까) 뭔가 변화가 있겠지, 그렇게 맘을 편히 먹을 참이다.


어쨌든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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