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전형 다변화: 폭탄 돌리기/문제는 경쟁교육시스템이자 경쟁사회시스템

2017. 1. 1. 20:27etc/교육문제

요즘 대학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곧 아이를 대학에 보낼 부모들, 그런 아이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학원업계 사람들, 고교선생님들, 대학입학관리 직원들 정도일 것이다. 아직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있는 내 경우, 이 문제에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미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거나 나온 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별 관심이 없을 사안이다.


내 기억은 상당히 오래전 것인데, 소위 정시모집이라는 것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형태만을 기억한다. 내신이라고 불리는 교내 성적과 수능이라는 전국적 시험의 결과가 대학 선택의 절대적 근거가 되었다. 그 이전의 학력고사 시대(일부 학교의 본고사)의 선발 형태에서 시험 형태가 크게 바뀐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의 '시험 성적'(교내든 수능이든)이 대학을 결정짓는 방식이었다.


뉴스를 통해서 간간이 들었던 것이 논술이 강화되었다가 그것이 사교육/지역간 격차 문제로 다시 약화되고, 교과외 활동이 강화되었다가 그것 역시 사교육 시장을 과열시킨다는 이야기로 그것도 또 약화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시모집이 있고, 정시모집이 있으며, 정시입학생들이 수시입학생을 괄시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어릴 적 대입시스템의 문제, 그것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기회균등의 원칙에 반하게 부의 되물림을 강화시키는 장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입학사정을 다변화 해서 학생들의 진로적성에 맞게 선발하는 방향으로 점차 바뀌면서 시험성적이 아닌 아이의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시스템이 개발 도입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형도 단일하지 않고,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 종합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일반전형(정시) 등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관련 업계에서는 초중 단계에서 아이가 어떻게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대응하기 쉽지 않은 전형체계가 지금의 것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교과외 능력을 보기 위해서 봤던 교과외 활동, 이로 인해서 각종 경시대회 및 올림피아드 등 교외 시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부모의 관심과 투자가 없는 아이들이 당연히 그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전형에서는 교외 활동을 전혀 넣을 수 없게 되었는데(어떤 전형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부 전형 쯤이었던가?), 그러면 교내 활동이 중요해진다. 이에 대해서 정보를 가지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학교들이 어느 학교들인가? 소위 지역의 명문고라는 데들과 특목고, 자사고 등이 여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는 수도권 고교가 지방 고교보다는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부를 가지고 대학에서 학생의 능력을 검토하려고 하는데, 학생부에 별다른 활동 기록이 없다면, 그 반대로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 기록이 담겨 있는 학생부를 들고 있는 아이와 어떻게 경쟁을 할 것인가? 그 아이가 그 분야에 정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점검할 수 없게 된다. 가령 언론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교생이 학내에서 글쓰기나 사진촬영 내지는 교내 신문 발간 활동을 뒷받침하는 동아리나 교내 활동을 해 나간 아이와 관심만 있고 그러한 활동 스토리가 없는 아이, 둘 중 어느 아이가 미디어 관련 전공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여기에서도 지역편차, 부모재력편차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가 인생의 많은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놔 둔 상태에서 학생선발체계만 바꾼다고 이 불평등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해소하지 못한다. 입시중심 교육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기성의 사회적 위계를 공고화 고착화시키는 장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우리 사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은 게 아니다. 그것이 교육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선택되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부모들이, 많은 유권자들이 이 해결책에 눈길을 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왜? 이제까지 우리가 걸어 봤던 길이 아니라서, 즉 익숙하지 않은 패러다임이라서다.


교육 쪽도 기준을 미국에 뒀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듯이 그들도 자기들 교육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본 받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 학생들의 비명을 유튜브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 세계 학생들 학업성취도 평가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서 1등은 한국이 아니었다. 핀란드였던 것 같다. 정말 알아보고 적용해 보려고 애써야 할 것은 2등의 교육 정책이 아니다.


핀란드와 미국의 교육 순위_〈Where to invade next〉의 한 장면


더 적은 시간, 학업에 대한 더 높은 만족도로 우리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교육시스템이 있다면 응당 따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글로벌스탠다드를 늘상 외치는 사람들이 여기에는 눈과 귀를 닫는다. 교육'산업'의 문제가 개입되지 않았는가 강하게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핀란드를 보자.




마이클 무어의 <Where to invade next>에 나온 핀란드 교육에 대한 이야기. 간단히 말해서 미국의 교육시스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가져와야 할, 본받아야 할 교육시스템으로 한국의 것이 아니라 핀란드의 것을 지목했다. 왜냐면 그들이 1등이니까. 마이클 무어의 선택은 간단했다. 오바마의 선택과는 달리.


레이스형 교육, 입시경쟁 교육시스템은 '물고기가 나무에 오르게 만드는 교육'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이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 온 것 같다. 이런 캠페인 영상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저 영상에서도 해결책은 제시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낯선 것이지만. 아이들이 각자 가진 능력,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잠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부존자원이 없고 인적자원만 풍부한 후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사회시스템이 아닐까?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시스템 만이 한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급변하는 세계 경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우린 자원이 없다며, 사람 말고는. 그렇다면 이 부문에서 최대 효율성을 끌어내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교육'산업'에 종사하는 몇몇의 호주머니를 걱정하며, 이 정도 선이 최선이야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닌가?


한때 우리가 서구화로서의 근대화를 시도할 때, 제대로 읽고 쓰고 고용주의 말을 알아듣고 행동할 수 있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산업의 역군으로 불리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 교육의 당면 과제인 시절이 있었다. 보편적 교육이 그저 부모의 일을 물려 받거나 아동노동에 노출되어 미래를 저당잡혀 사는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시대가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대인지 물어봐야 한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문맹으로 고통받고 있는가? 기본적인 수준의 능력을 갖춘 산업 역군이 많이 필요한가? 


대학을 기업에 외주화시키면서, 산업체에 적합한 인재,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대학에서 지금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로 된 수업들이 많아지고, 돈이 되지 않는 인문 사회과학은 사라지고,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영, 기술 쪽 수업들만 남기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동력'은 또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업체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즉 기업체 맞춤 교육마저도 상당수의 학생들을 '패배자'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자 들어간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퇴직 연령이 40대 후반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을 수 있었다("정년 늘어났는데… 아빠는 더 빨리 회사 그만뒀다").


많은 사람들이 '루저'가 되는 게임이 지금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다. 우리에게 '사람'밖에 없다고 가르쳤던 나라가 맞는지 싶다. 저렇게 버려지는 인적자원이 얼마나 많은가. 각자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면, 적재적소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사람들을 살리는 교육. 그들 각자가 자신의 재능에 눈 뜨게 하고, 자신의 행복을 향해 활기차게 달려갈 수 있게 하는 교육. 그런 교육의 길을 우리 사회가 왜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가?


교육문제를 교육시스템만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좋은 해결책들(가령 대학서열화 해체, 국공립 대학 통합, 시험 폐지 등)이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가 경쟁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교육만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 각자가 공정한 제도 아래에서 서로 협동하고 화합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퇴직 연령이 낮아지더라도 이내 직장을 구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직종에 종사하든지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연봉 수준을 포함해서), 직업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빈의 대물림이 되지 않도록 교육에서도 균등한 기회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가령 대학등록금 낮추기 내지는 무료화). 의료혜택도 빼 놓을 수 없다.


사회가 제대로 안전망을 구축하고, 승자 독식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면 교육 분야에서의 경쟁시스템도 자연스럽게 협동과 조화, 적성 개발형 교육체계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개혁과 교육개혁이 같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패러다임 전환이 용이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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