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부적에 관한 글: 기적인가 주술인가?

2017. 5. 25. 21:41연구노트/종교와 종교학

John L. Crow, “Miracle or Magic? The Problematic Status of Christian Amulets,” in From Discussion to Experience: Religious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Amsterdam, edited by Jacqueline Braak and Deirdre Malone, Amsterdam:  Ars Notoria/University of Amsterdam, 2009, pp. 97-112.

참고: https://www.johnlcrow.com/curriculum-vitae.html


기적인가 주술인가? 기독교 부적의 문제적 위상

존 L. 크로우


이 글은 기독교 부적의 역사를 17세기까지 다룬다. 세부 내용으로는 기독교 부적의 기원,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부적의 유행과 금지, 부적에 대한 기적과 주술의 구분, 실용적 상품으로서의 부적에 대한 논의가 다뤄진다. 글 말미에는 기독교 부적에 대한 연구, 특히 ‘주술’을 다루는 연구가 갖는 한계를 검토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부적의 주요 형태는 텍스트가 새겨진 사물이다. 

본격적 이야기에 앞서 저자는 부적(amulet)의 정의를 간단하게 짚는다. 라틴어 amuletum에서 나온 말이고, 어원상 아랍어 hamalet과 연결되는 말로, “수많은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는 힘을 지닌 것으로 몸이나 목 주위에 착용하는 사물”을 말한다(98).


기독교 부적의 기원 

실제의 ‘기원’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관련성 정도로 이해되는데, 왜냐하면 그런 부적의 사용이 서구 역사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집트, 그리스, 로마, 유대 문화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이 부적들은 옷에 부착하거나 가방에 넣거나 비밀 장소에 놓이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주로 악한 힘으로부터의 보호,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쓰였는데, 다른 이의 사랑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것,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 위한 것, 재산이나 가축을 사악한 주술과 악령에게서 지키기 위한 것, 지식이나 지성을 얻기 위한 것도 있었다.

tefillin


tefillin 착용법

유대교의 테필린tefillin, 긴 양피지 조각에 성경 구절(출애굽기 13:1-16, 신명기 6:4-9 외)이 적힌 것으로 이미와 왼쪽 팔에 착용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내가 한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골수에 새겨두고, 또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신명기 11:18) [새번역]

유대교 케미야kemiya, 의료 목적으로 사용된 부적. 여기에는 주로 시편 내용이 활용되었다. 생식력, 공포, 전염병, 궁핍, 상처 및 심장, 눈, 뼈, 일사병, 간질 등에도 이런 부적이 활용되었다.

기독교에서 시편이 보호와 건강 문제를 위해 사용된다. 시편 90편이 가장 유명하다.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

16 주님의 종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 주시고, 그 자손에게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시오.

17 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외 8, 12, 28, 120편.

기독교의 부적은 라틴어나 히브리어 구절뿐 아니라 복음서, 신약에서도 구절을 뽑아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십자가의 기도’ 같은 잘 알려진 기도문이 그런 텍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와 함께 한다. 내가 항상 찬양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참된 활력이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악을 멸할 수 있다. ...’

기독교 전례가 부적을 만드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5세기 파피루스에 쓰인 부적은 전례 텍스트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가 다양한 기독교 부적의 기원을 살핀 것은 기독교 부적이 이교적 기원을 갖는데, 수용 이후 기독교의 독특한 체계에서 발전했다는 시각을 염두에 둔 탓이다. 이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없지만, 수용할 수 있는 버전은 중세에는 이미 이교적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기독교적 시각에서 그러한 사물이 오롯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주술의 금지 

주술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부정적 인식에서 금지 규정이 나왔음을 살핀다. 우상숭배와 부적을 연결짓는 논의다. 부적이 악마와 관련되고, 미신적이고 오류가 가득찬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이 영향이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주술 범주 배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주술’은 특정 행위 기술하는 게 아닌 교회에 의해 불법적 관념과 행위를 지칭하며 경멸적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엘리트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부적은 널리 확산되었다. 통제력의 한계도 있고 대중의 무관심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13세기에 금지 일변도에서 교회의 입장이 다소 바뀐다. 과학이 비의적 현상의 자연적 이유를 제시하면서라고 한다. 신이 만든 천상적 존재의 자연적 힘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게 부적이라는 관념이 유포되었고, 교회에서 공인된 부적과 악령적 부적의 구분이 이루어졌다. 글 첫머리에 나온 노스엄버랜드의 리처드 사례(성 수리 기술자인데, 수도사가 성자의 성유물을 부적으로 쓰도록 준 에피소드)와 관련된다. 아퀴나스는 천상적 영향력을 끌어들이는 부적은 승인하고 사악한 악령과 계약을 맺는 부적은 금지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이를 천상적 힘을 끌어들이는 부적(amulet)과 지적 사색의 특성을 가진 탈리스만(talisman)을 구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대중의 부적 사용 양식에 어떤 충격도 주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피치노의 구분은 기독교적 실천에서 나온 말로 쓰인 부적과 그렇지 않은 부적 구분하는 게 아니었다. 아퀴나스와 일반 대중은 그랬지만. 피치노의 구분은 상호 배타적인데 반해(천상적-합법적vs초자연적-악령적), 대중은 합법적이고 초자연적 성격의 부적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구분법이 기독교 부적, 주술의 분류를 문제적이게 한다고 지적한다. 성경적 실천의 경우 그것이 초자연적이라고 해도 ‘주술’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부적을 다음의 경우에 인정했다. 성스러운 말, 십자가 기호를 의미하는 성스러운 상징을 담는 부적과 힘의 원천이 아닌 신의 힘에 대한 신앙의 표식이나 상징인 경우이다. 이러한 이해에서 교회가 성화한 부적이 정당하게 성직자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었다. 교회의 공인된 초자연적 현상, 기적. 금지된 것, 주술.


기적과 주술의 희미해지는 구분.

15,6세기를 지나면서 출판물 급증, 문자층의 증가 등 다양한 요인으로 ‘부적 생산’의 주체가 성직자에서 ‘교활한 사람들’cunning-folk에게 넘어갔다. 이들은 주술적 일을 수행하고 돈벌이를 하는 전문가 혹은 준 전문가 집단이다. 교회의 금지의 힘은 당연히 약화되는 것이다. 세속 국가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영국의 제임스법James Act이 그 예다. 다만 이 법령은 느슨하게 적용되었다. 세속 국가의 관심사가 많았기에 이런 일에까지 신경 쓸 여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문제가 된 케이스들은 이들 전문가들이 돈을 받고 서비스(부적, 목적한 바의 성취?)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서였다. ‘교활한 사람들’은 마도사witch와 차이가 있었다. ‘마도사는 사악하지만 교활한 사람들은 유용했다.’

교회는 고유한 힘을 가진 부적과 신 혹은 악령의 힘의 원천 사이의 구분을 만들려 애썼지만 대중은 따르지 않았다. 부적은 보이지만 힘의 원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쉽게 무시될 수 있었다.

부적은 기독교 상징과 어구를 사용하곤 했지만 ‘교활한 사람들’은 이러한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의 어구는 잘 알지 못한 채로 복제되어 문법, 철자가 엉망인 상태로 만들어져 유통되기도 하였다. 주술적 어구, 영적 존재의 이름, 비의적 상징, 점성술 상징 등이 활용되었다. 그래서 주술은 경멸적 표시의 의미만 갖지 않게 되었다. ‘교활한 사람들’의 주술은 단지 실용적인 것이었다.


학계에서 주술과 기적 연구의 난점 

주술 개념의 편향성, 학자들 간의 공유되지 않는 개념, 역사적 개념을 준용할 때 특정 종교 전통의 시각을 영속화시키는 문제, 주술 연구에서 식자층 ‘교활한 사람들’이 더 주목되는 경향 등이 지적되고 있다.


편견과 한계에도 이러한 연구가 필요한 것은 엘리트들의 종교적 삶만이 기독교의 역사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주술 혹은 대중종교에 대한 연구 도전을 위한 ‘문제’를 이해하는 측면의 논의였다. 다만 기독교사 토대의 논의였기 때문에 ‘기적’의 특수성에 대한 벽에 너무 연연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기적과 주술 사이의 구분은 기독교 텍스트와 전통에 기초한 것인가 아닌가, 교회에서 공인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지극히 정통론적 정치적 담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자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논의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편견과 한계’를 극복하는 첫 단추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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