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을 야기하는 '여성혐오'라는 개념

2018. 2. 7. 23:26etc/삶에 관한 단상


구형찬 박사와의 '진화-인지-종교' 세미나를 통해서 어렴풋이 느끼게 된 점 하나: '혐오'로 불리는 많은 현상이 '비인간화'dehumanization의 개념으로 더 잘 포착되리라는 것. 권최연정 선배의 발표*를 들으면서 이런 관심이 점화되었는데, '여성혐오'의 경우 분명 '혐오'는 널리 잘 쓰이지만 현상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한신대 종교와문화연구소 2017년 하반기 심포지엄, '혐오의 시대, 종교의 자리'라는 주제 하에서 발표된 "여성혐오와 교회 내 성차별"

해당 글은 이미 〈종교문화연구〉 29호에 실려있다. 이곳을 통해서도 다운로드 해서 볼 수 있다. 간행물>종교문화연구>29호>해당 아티클 클릭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공격이나 다양한 권력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은 '혐오'라는 인간의 어떤 감정에 기초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혐오를 나눠서 증오와 역겨움으로 구분해 보아도 여성에 폭력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증오를 느끼거나 역겨움을 느껴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증오'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 발휘될 수도 있겠다. '나에게 좌절을 안기는 여성에게 복수하겠다'는 뒤틀린 욕망이 두드러진 경우에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실 '상대적 약자'라는 인식이 뒷받침되어 해당 감정이 발휘되는 것 같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많은 경우 분명 가해자는 상대방보다 물리력이 더 세다는 인식이 전제되고 있다.


역겨움의 반응을 고려하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서 '역겨움'을 발견하기는 사실상 거의 어려운 것 같다.


'여성비하'라는 표현이 사용되긴했는데, 이 말보다는 '여성혐오'가 더 사회적 적합성을 갖는 것 같다. 여성들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적 물리적 폭력에 정말 진저리치게 되면서 이 조어의 적합성이 높아진 것 같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도 언론은 처음에 '혐오'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성들은 해당 사건을 '혐오'로 전유했던 것 같다.


성차별, 여성비하라는 말들이 퇴조하고 '여성혐오'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분명 여성들의 담론적 '반격'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술의 당대적 효과의 적합성을 고려하면 사실 적합성의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일상, 정치, 투쟁의 장에서). 그렇지만 현상 자체를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한다면(학술의 장에서), 당대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개념의 사실 적합성을 전제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다.


'misogyny=여성혐오?'의 논란도 여성학계에선 모르겠지만 사실 여성비하, 차별 등을 굳이 'misogyny'와 엮는 것부터가 문제지 싶다. philogyny만 고려해 봐도 모든 논리가 어그러지게 된다. 


가령, 여성애호자가 여성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쳐서 살인을 저질러 여성의 신체를 변형하여 소유하는 행위(적확하게 대응되지는 않겠지만, '향수'의 장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생각난다)가 '여성혐오'로 표상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용어의 교통정리는 쉽지 않겠지만, 특히 학문의 장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하루속히 교통정리가 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여성혐오'라는 말이 '차별, 멸시, 비하'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혐오'가 일상어로서 이해되는 측면을 불식할 수 없기 때문에 오해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이미 지적된 문제기도 하다.


"여자 좋아하는 내가 왜 여혐?" 이렇게 묻는 이유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나?


'여성혐오'(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