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와 경외감 _《코스모스》 완독 1주차

2018. 10. 26. 08:53글읽기

20181021코스모스완독 프로그램

 

본격 책읽기 첫 번째 날

 

강의가 없이, 각자 1,2장을 읽고 쪽글 써온 것으로 주어진 문제에 답을 작성하고프로그램 진행자(이명현)에 의한 책의 정보 오류나 책 배경 설명 등이  진행되고, 주어진 질문에 각자의 답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시작해서는, 지난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전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을 하고 쪽글을 바탕으로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어진 질문은 다음의 것들이었다.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아님)

 

1) 1,2장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무엇인가?

 

2) 제안하고 싶은 토론 주제는 무엇인가?

 

3) 1장에서 칼 세이건이 도서관 이야기를 왜 했다고 생각하나?

 

4) ‘외계 생명 탐구 중요하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에 동의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5) ‘생명의 기원과 진화가 시간만 주어지면 우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한 칼 세이건의 말에 동의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몇 가지 오류

 

이 질문에 대한 토론 전에 책 내용 오류와 배경 설명 시간이 있었다. 이게 예정된 시간보다 길게 진행되었다.

 

먼저 머리말의 29(이 프로그램에서 보는 책은 2006년 출간된 최초 완역판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옴)에서 중성미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닫힌 우주라고 기술된 부분이 현재의 우주론과 다른 부분이라고 지적되었다. 세이건은 중성미자의 질량(당시로서는 가설적 이해수준이었다고)이 있어 우주의 총질량이 빅크런치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하여 닫힌 우주라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표준 우주론은 가속 팽창 우주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강의자는 표준입자 모형에서 예측되는 중성미자의 질량은 0이라는 이야기며, 현대 소립자물리학에서 중성미자 질량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등등의 설명을 해 주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를 한 동안 들으면서 가속 팽창 우주이야기는 들은 바 있어서 닫힌 우주언급은 시대적 한계를 갖는 정보라고 이해하고 넘어갔었는데, 거기에 중성미자나 암흑물질 질량 이슈가 연결된 부분은 전문가의 설명 없이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41쪽의 우주(주로 관측 가능한)에 별이 얼마나 있나를 설명할 때, 1000억개의 은하에 각각 평균적으로 1000억개의 별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되어왔는데(10^22), 현재는 (관측기술의 발달로) 1조개의 은하에 각각 평균 1000억개의 별이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고 한다(10^23, 아보가도르 수에서 익숙하게 보던 수라 과학자들이 좋아한다는 설명도 이루어짐).

 

45쪽에서 현재 태양계 행성의 지위가 박탈된 명왕성이 여전히 태양계 행성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명왕성은 2006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학연맹(IAU) 총회는 24일 고전 행성(classical planets)의 범주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기사참고) 이때의 일을 보면서, ‘행성이란 개념이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우주 그 자체의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기는 어려운 개념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떠올리게 되었다.

 

60쪽에서 우주의 나이를 150-200억년이라고 쓴 부분도 지적되었다.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137억년을 최근의 관측 결과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138억년 혹은 137.8억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여러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정보는 우주의 나이를 ‘13.799±0.021 billion (109) years’로 본다고 한다. 중간값으로 138억년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배경 설명

 

오류 지적은 이 정도였고, 2장의 몇몇 부분에 대해서 배경설명이 이루어졌다. 65쪽의 외계 행성의 생명문제(태양계 밖의 지구형 행성에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연구되고 있음), 82쪽에 미토콘드리아이야기(그의 첫 번째 아내 린 마골리스가 확립한 것, 당시에는 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내용이라고), 94쪽의 유리-밀러 실험’(원시 지구 대기 시뮬레이션 실험, 당대 쟁쟁한 과학자의 랩에서 인턴을 한 10대 후반 대학생의 전설의 레전들 썰), 99-103, 목성과 같은 행성(가스형)에서 가능한 생명체 모델 시뮬레이션 이야기(실제 이걸로 논문을 썼다는 썰) 등이 다뤄졌다.

 

여기까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을 때, 이미 남은 시간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거의 1230분에 근접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이야기 나누기(토론이 된 것은 아니기에)

 

4-5인 정도가 테이블에 둘러앉게 되었는데, 전적으로 온 순서와 자리 선호에 따라서 그룹이 결정되었다. 나는 한 가운데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나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10대 남자 2(1인은 초딩 혹은 중딩, 다른 1인은 고딩(?, 서로 통성명이나 나이 묻기조차 하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모른다)), 20대 여성 1, 50대 여성 1(연령은 모두 추정)과 앉아 있었다.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당연히 토론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키면 좀체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도 별 다를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어 이거 되겠는데..’하는 생각으로 입을 뗐다.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를 볼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우리 테이블의 진행은 내가 맡았다. 각자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해당 질문들에 자신의 답을 이야기했다.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남지 않아서 제대로 된 토론이 되지는 못했다.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

 

애초 책을 읽어가면서 쪽글을 써오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내가 했을 리가 없다. 물론 머릿속으로 생각해 둔 것들은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위에서 제시된 질문들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각 질문에 대해서 내가 정리한 건 다음과 같다.

 

1) 인상적인 부분

헤이케 게 이야기’, 인위선택의 사례

 

12세기 초 일본 내해 단노우라에서 겐지가와 헤이케가가 격돌했다. 당시 천황은 헤이케가였던 안토쿠라는 7세 소년이었다. 이 소년 천황도 전쟁에 나섰다고 한다. 헤이케가가 패배하고 남은 헤이케가 사무라이들이 자결하고 소년 천황도 할머니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일부 생존자들이 근처 어촌에서 살아 후손을 남겼는데, 이들은 단노우라 해전을 기억하는 축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구전 전설에 헤이케가 사무라이들이 게가 되어 단노우라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게의 등딱지는 마치 인상을 쓰고 있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가졌다.

 

세이건은 이를 artificial selection 사례로 이야기한다. 얼굴 모양으로 인식되는 형태의 등딱지를 가진 게들을 사람들이 헤이케 사무라이 유령을 떠올리며 놔 줌으로써 그 개체가 당시 생존 환경에서 적합성을 가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된다.


 

역사적 사건이 진화와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그 연결을 가능케 하는 것이 죽은 헤이케 사무라이에 대한 사람들의 집단 기억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귀신(초자연적 행위자)과 진화가 만나는 사례가 아닌가!

 

2) 제안하고 싶은 토론 주제

 

인위적 선택과 자연선택을 생각해 볼 때, 환경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보호와 보전만이 최적의 해법일까?

 

이런 질문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 시각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트릭스1편에서 스미스 요원이 모피어스를 심문하면서 인류는 포유류가 아니라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부분이 오버랩되었다.

 

2014년판 코스모스다큐 2편에서는 대 멸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대격변에 지구의 주인이 계속 바뀌어 왔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힘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건 과연 자연으로부터 순수하게 분리되는 것일까?

 

인간이 스스로의 숨통을 죄는 일은 그 자체로 지구 구성원의 활동이고 전체 생태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지와 상관없이 지구 생태계의 한 변화 요소일 따름이다. 자연선택의 수레바퀴는 그러한 조건에서도 작동을 하고, 바뀐 환경에서 적자를 골라낼 것이다. 인간이 환경 보호를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자연의 그러한 활동은 특별한 방향성 없이 지속될 것이다.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무수하게 상상하면서 그에 대처하자고 호소하고 변화를 모색하지만, 결국 인간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계를 구분하고 자연의 반작용이 인간 종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과 지구 멸망, 혹은 더 좁게는 생태계의 멸망은 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소행성의 충돌이나 환경오염 등으로 현재의 지구 생태계가 붕괴된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뿐이다. 설혹 안 만들어진다고 해서 우주적 차원에서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물질의, 우주적 관점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일이란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물론 이러한 귀결로부터 인류의 실천을 묻는다면, 그럼에도 인간적인 관점으로 자연과 함께 살기를 고민해야 한다로 회귀하는 태도나 쾌락주의 혹은 염세주의로 기우는 것이 될 수 있겠다. 어쩌면 파스칼의 고백을 되뇌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는 무한한 공간 속에 가라앉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이곳에 있고 저곳에 있지 않은 사실에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 《팡세》 中

 

이야기가 너무 나간 감이 있다. 환경문제로 초점을 다시 돌린다면 보존이나 보호의 한계를 사유할 필요가 있겠다.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이 지구적 환경에 정말 의미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묻고 싶다.

 

3) 도서관 이야기 왜?

 

세이건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를 1장의 후반부에 한참 하고 있다. 그곳에 담겼던 코스모스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암흑기로 표현되는 중세의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었고, 과학 발전의 역행, 지체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담긴 인류의 지식이 후세에 남겨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 아쉬움을 독자들에게 전달이 된다면, 당대의 신념을 넘어서는 지적 결과물에 대해서 좀 더 관용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환기될 수 있을 것이다.

 

4) ‘외계 생물에 대한 탐구,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한 세이건의 말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취지상으로는 동의할 수 있다. 우리와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때, 그것과 비교를 통해서 우리를 상대화시킬 수 있고, 기존의 관점으로 보이지 않던 우리의 모습을 조명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자명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낭만적 주장에 불과하다. 인류가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분명 비용보다 편익이 커야 그러한 탐구가 정당화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중서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외려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5) ‘생명의 기원과 진화가 시간만 주어지면 우주에서 필연적인 일이다라고 한 세이건의 말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현재 제시된 원리상으로 보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별에서 유기 물질이 만들어지고 그 유기 물질이 적절한 환경에서 생명체로 진화해 나간 것은 재현 가능한사건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에서 생명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을까?

 

그러나 회의론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만날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또한 태양계 내 주요 후보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명제를 완벽하게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다른 참여자는

 

나를 제외한 4명 중 3명은 과학교양 함양보다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어린 친구는 신은 존재하는가하는 토론 주제를 제시했다. 10대 후반 참여자는 가장 전형적인 이해, 이 우주에서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에 대한 인식이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는 면에 주목했다. 나이가 가장 많았던 참여자는 신의 존재,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20대 참여자는 과학교양 함양에 보다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어떻게 읽히나?

 

과학적 존재론, 과학적 철학, 과학적 신화 등등으로 읽히게 되는 것 같다. 우주에 대한 지식을 접하는 것은 왜 인간에게 경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