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소금산엘 가다

2018. 12. 14. 02:08여행, 답사, 참관

11월 24일, 내가 사는 곳의 산악회의 여정을 따라 나섰다. ‘사람들이 산에 가는 이유’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등산’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었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산에 갈 요량이었고, 전에 한 번 인연을 맺었던 산악회를 떠올렸고, 부랴부랴 11월 산행에 따라 나섰다. 목적지는 충북 제천의 금수산이었다. 


나는 24일이 되기 전까지 산행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기로 한 것만도 어딘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탓일 게다. 11월 산행이 얼마나 추울지, 날씨 문제는 어떨지, 간식이나 도시락이며, 심지어 등산할 산에 대해서조차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기 전날 아내가 점심 도시락은 어찌할 것이냐 묻기에, '김밥이나 사 가지 뭐', 했다가 산이 추워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거라 일러 주며 따뜻한 죽을 보온 도시락에 싸 가는 게 어떠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도시락 거리 챙기는 김에 간식도 필요하겠거니 해서 몇 가지를 챙겨 놓았을 뿐이었다. 아마 출발 10시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당일 아침에 버스에 몸을 싣고 제천으로 간다니 토요일에 차도 막히고 해서 제법 이동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하는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등산해야 할 산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많은 눈이 내리면서 다른 생각이 더 많이 들긴 했지만. ‘하필 이런 날...’


집에서 아침 6시에 나서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오전 5시는 통상 나의 취침 시간과 가까운 시간이다. 그래서 맘을 단단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지만 쉬이 잠은 들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설핏 잠이 든 듯하다. 5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는지, 이것저것 챙길 걸 생각하느라 마음만 부산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생각보다 10분 늦게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고 보니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린다. 전날 본 일기 예보에 오전에 눈이 내린다 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산에 오를 때 쯤에는 별 상관이 있으랴, 버스 타고 가다보면 그치겠거니 하고 버스 타는 곳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조금 늦은 건 아닌가 하고 버스 서는 곳을 두리번 거려보니, 다른 산악회 버스는 보이지만 내가 탈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떠난 건가하고 눈 내리는 새벽 길을 서성이다 보니 모퉁이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나타난다.


익숙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자리를 잡고 버스는 출발했다. 어두운 새벽 길을 뚫고 도심을 빠져 나가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데도 눈이 그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차차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등산 못하는 것 아닌가?’ 나도 잘 알고 지내던 어르신에게 물었다. ‘이러면 산 밑에 가서 밥만 먹고 오는 건가요?’


사람들의 동요가 커지자, 부랴부랴 산악회 임원들이 회의를 한다. 어느 산으로 바꾸자는 사람, 가던 산으로 그냥 가자, 어차피 남쪽은 눈이 별로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 이대로 돌아가 맛있는 밥이나 먹자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토론을 했다. 한참 격론을 벌인 끝에 충북 제천 금수산에서 원주 소금산으로 목적지가 바뀌었다. 제천 가는 길에 있는 원주를 우리는 이미 지나고 있었고,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30분 이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리란 안내를 받았다. 산악회 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어느 어르신은 ‘올해 소금산을 몇 번째 가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 놓으신다.


소금산,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산이다. 뭐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산을 가본 적이 없는 내게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이름은 왜 ‘소금’인지, 어디에 있는지, 뭐가 유명한지 뭐 하나 아는 게 없다. 그래도 산악회에서 가니 그저 따라 나설 뿐이다. (산행 중에 들은 말은, 금강산 같은 절경을 지닌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이라는 풀이를 들었다. (한자로는 '小金山' 혹은 '小錦山'이라고 한다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검색을 통해서 찾아 본 거지만 이 산명의 공식한자표기를 찾을 수 없었다. 19세기 고지도를 봐도 산명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명칭의 풀이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설명 같은 느낌이다.)


이미 적설량이 꽤 되는 상황이었다. 산악회 임원 중의 한 분이 진입로 오르는 데 문제가 없을까 하고 걱정을 한다.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금산으로 가는 진입로에 멈춰 선 버스를 만나게 되었다. 경사진 길에 그대로 멈춰 서게 되었다. 차가 막혀서 그런가 싶었더니 한 버스가 중간에 멈춰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멈추게 되었다. 눈이 쌓이 경사진 길에서 버스가 멈추면 다시 움직이기 쉽지 않다는 걸 처음 목격한 상황이었다. 제설이 어느 정도 되어야 버스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여기서부터 소금산까지 걸어가면 된다’는 해결책이 제시되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버스에서 내려 눈 속을 걷기 시작했다.



앞에 선 버스들에서도 사람들이 내려 소금산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 버스에서 산 입구까지 2.5km 가량 되었다. 걸어서 3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걷는 와중에 제설 차량(개조한 1t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소금산 주차장에 도달할 즈음에는 길이 뚫렸는지 버스들이 들어왔다. 버스에 타고 있었어도 되었을 뻔 했다.


소금산 입구에 오니, 마침 도착한 등산객들이 상당했다. 연령층은 주로 중장년층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주차장 옆쪽으로 선로가 있었고, 그 위로 관광열차가 지나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라 열차 안에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잠시 산악회 회원들이 모이는 시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이 많이 오면 같이 눈사람 만들자던 첫째의 바람이 생각났다. 이렇게 많이 오는 날 집에 있었다면 약속을 지켰을텐데 하고 생각하며 혼자 자그마하게 눈사람을 만들어 봤다.



입장료를 내고 각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손목에 착용하도록 되어 있는 입장권을 보니 ‘출렁다리입장권’이라고 적혀 있다. 이곳에도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나보다. 작년에 가본 ‘마장호수 출렁다리’가 생각났다. 그곳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곳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입장료는 3,000원(원주시민은 1,000원이라고)을 받지만 지역화폐로 2,000원을 환급해 준다. 지역 내 식당과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눈 덮인 소금산의 풍경은 제법 볼만 하였다. 열심히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었다. 구형 아이폰4(전화기로 사용하지는 않는, 아이팟처럼 쓰는)로는 멋진 풍경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출렁다리까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쉬운 난이도의 등산코스였다. 다만 한낮이 돼가면서 쌓인 눈이 녹으며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이 많아 모자를 뒤집어쓰고 올라야 했고, 등산로가 좁아 앞에서 지체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출렁다리에 오자 산악회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출렁다리’만 찍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단체사진을 찍는 타이밍이 되자 사람들이 부른다. 사진에 나올지 어떨지도 모르겠는 뒷자리에서 까치발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이제까지 구경을 못해봤다. 공유하는 ‘까톡방’에 접근할 수가 없으니;;(까톡 탈퇴 후 현재까지 불편하게 살고 있다. 왜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하지 않을까;;)



소금산의 출렁다리는 깊은 계곡 사이에 만들어졌다. 검색을 해 보니 높이가 100m에 이른다고 한다. 직접 본 바로 그 높이가 100m에 이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높이에 이른다는 느낌은 받았다. 지금이야 이 계곡으로 출렁다리가 놓여 까마득한 높이의 아찔함을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출렁다리가 놓인 산마루를 보니 충분히 계곡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마천루가 없었던 전근대 시기에 아찔한 높이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이런 곳이었으리라. 새의 시각이나 하늘의 시각을 산에서 찾아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왜 하늘 신을 만나러 사람들은 산에 올랐을까?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평지보다 하늘과 더 가깝다는 의식도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 하는 이유 중 하나였을테다. 


산을 오르며 ‘하늘과 더 가까워진다’는 느낌으로 신성한 감각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산에 올라도 하늘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산에 올라서서 느끼는 ‘특별한 체험’ 중 시각적 측면이라면 다분히 평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케일의 광경일 것 같다. 거기에서 어떤 신적인 존재의 시야, 사해를 두루 굽어보는 시야가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을지.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6gvcT5xiFcw 동영상 섬네일 이미지


낮은 소금산이지만, 고작 100m 높이의 계곡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위협감을 주는 높이임에 틀림없다. 이곳을 지나면서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어지러움과 공포를 호소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나도 고소공포증이 심했다면 그곳을 걷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기우와도 같은 상상, 이 다리가 끊어진다면 저 아래로 떨어질 텐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하며 지나갔다. 아마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광경은 분명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발설한다면 겁쟁이 취급을 당하겠지만, 아찔한 뷰에 대한 짜릿한 감각은 분명 공포 반응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루돌프 오토

이미지 출처: https://www.magiscenter.com/numinous-experience/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라는 신학자겸 종교학자는 종교적 경험으로서 성스러움의 체험에서 느끼는 감정을 ‘누미노제’Numinose(‘Numen, 이름 붙일 수 없는 신적 존재’에 대한 느낌)로 개념화했다. 누미노제 체험은 우리가 소위 ‘경외감’이라고 말하는 양가적 감정으로, 두려운 떨림(tremendum)과 신비한 매혹(fascinosum)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두려운 떨림과 매혹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대자연의 스케일과 맞닥뜨렸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이미지 출처: 마운틴TV, https://tv.kakao.com/channel/9245/cliplink/81027200


사바나 초원과 같은 사방이 지평선으로 이루어진 탁 트인 공간이나 그랜드 캐니언 같은 엄청난 스케일의 장관을 우리의 땅에서 만나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산들에서 만나게 되는 뷰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의 ‘대자연’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것이긴 하다. 사람이 사람 만하게 보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 산에서는 개미 만해지는 사람, 혹은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을 지워버리는(옆의 등산객 때문에 현대의 등산에서 이런 순수한 체험은 어렵겠지만) 자연, 산의 크기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실로 아주 작은 것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런 시야의 전환은 다분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고통스럽게 살아왔던 일상을 자연의 스케일로 ‘관조’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는 없는데...’, ‘OO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었는데, 인생사 이렇게 잠깐 왔다 가는 것 아닌가’ 등등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조금 더 큰 스케일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만큼 삶의 여유와 아량을 키우는 것이다. 곧 마음을 넓히는 기술이다. 


'때론 정말 높이 올라갈 필요가 있다. 네가 진정 얼마나 작은지 이해하기 위해서' -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스카이다이버)


이런 생각을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한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자리로 돌아와 그 경험을 되새김질 해 보다가 떠올린 생각이다.


다시 등산로로 회상의 시선을 돌려본다.


출렁다리를 지나쳐서 우리 산악회는 정상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눈이 쌓여 있고, 그 아래에는 낙엽이 쌓여 있어 미끄러울 법도 한 길이었다. 그러나 눈의 두께 덕분에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행 분이 빌려준 아이젠을 그냥 들고만 다녔다. 얼지 않은 축축한 눈과 흙이 어우러지면 산행으로 묵직해진 다리를 더 무겁게 만들어서 미끄럽지만 않으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젠을 이용한 사람들은 신발에 들러붙는 눈과 흙을 떼어내기 위해서 종종 멈춰 서야 했다.


정상까지 1km가 조금 넘는 코스였다. 길고 험난한 코스가 아니어서 가뿐히 다녀올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짧은 코스임에도 숨이 벅찼고, 다리가 묵직해졌다. 더 긴 코스의 산행이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 내 수준의 체력으로는 딱 적당한 산행이었던 것 같다.


산에 오르면 숨이 차니 말이 줄어든다. 이것저것 머릿속의 생각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 힘들게 되면 저 모퉁이에서 잠쉬 쉴 것인가 계속 걸을 것인가, 머릿속에서는 그런 고민 밖에 남지 않는다. 다른 고민이 끼여 들 틈이 없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등산복을 쫙 빼 입었는지, 나는 방수도 안 되는 외투에 청바지 입고 올랐는데, 산악회 사람들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나, 산에 관한 글을 써야 하니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해야 하는데, 낯선 사람에게 말 붙이는 재주도 없는 내가 어쩌나 하는 생각 같은 것은 더 이상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harlandeastwood.com/product-tag/mountain-climbing/


‘아 힘들다’, ‘땀나는데 옷을 벗어야 하나’, ‘여기서 쉴까 조금 더 갈까’, ‘앞 사람은 왜 쉬지도 않고 떠들면서 이렇게 잘 오르나’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다리의 통증과 씨름하며 한참을 걷게 되면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헉헉대면서 그냥 걷고 있게 된다. 물론 소금산에서 그런 경험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내 정상을 밟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금산 343m’ 표지석을 만나자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줄을 서시오’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한 사람이 새치기를 해서 사진을 찍으니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 나온다. 어딜 가나 한국 사람들은 질서 의식이 없다는 둥, 표지석 위치가 줄서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둥. 나는 한 걸음 떨어져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몇몇 나무들에 산악회 표식이 매달려 있는 풍경이다. ‘여기 우리 왔다감’의 표시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여러 리본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마치 서낭나무를 연상시킨다. ‘여기 우리 왔음’ 다음의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잘 내려가게 해 주소’, ‘우리 산악회 굽어 살피소서’ 등등. 과도한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리본을 보진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정상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눈다. 과거에 참여했던 이 산악회 등산에서는 정상 언저리에서 점심 시간이 되어서 다 같이 싸온 도시락을 먹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몇몇 부부는 그 산에 잔치상을 올려온 것 같았다. 죽, 전, 과일, 족발 등등. 제 몸 하나 올리기도 힘겨운 산행에 저 많은 먹을거리를 어떻게 지고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페이스였던 내게도 정겹게 ‘이리와 들라’하며 먹을거리를 전해 주신다. 산정 부근에서 땀을 흘리며 맞은 잔치였다. 보온병에 담겨 있던 따뜻한 죽이 목을 타고 넘어가니 낯선 이의 관심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낯선 사람들과의 산정 잔치는 산악회 뉴페의 서먹서먹 쭈뼛쭈볏 얼어있는 마음을 녹이는 온기를 갖고 있었다.


소금산에서 그런 잔치가 온전히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전과 막걸리가 함께하는 소박한 나눔의 자리가 있었다. 산악회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사람도 살뜰하게 챙기는 ‘잔치부부’ 덕분에 나도 김치전과 꽉꽉 눌러 딴 막걸리 한 잔을 맛볼 수 있었다. 산 위에서 땀을 흘리고 사람들과 나누는 전과 막걸리는 생전 맛보지 못했던 신기한 맛을 느끼게 해줬다. 그 신기함은 몇 시간 후 식사 자리에서 넘치는 정으로 가득 따라진 소주 한 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출렁다리를 건너 정상을 오르던 그 길로 내려가는 하산로는 가파른 ‘404철계단’인데, 눈이 내린 터라 우리 산악회는 오른 길을 통해 하산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정말 경사가 심한 계단이었다.


이미지 출처: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69535


저질 체력의 소유자답게 내려올 때 이미 다리는 풀려 있었다. 그래서 등산에 나서면 항상 ‘산에서 내려오는 게 더 힘든데’하는 느낌을 받는다.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가야 하는 길을 풀린 다리에 몸을 싣고 중력의 이끌림에 그대로 미끄러지듯 쓸려내려 왔다. 몇 번 미끄러질뻔 했지만 다행히 큰 불상사 없이 출렁다리에 이르렀다. 일행을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 데 혈안이 되어 오를 때 놓쳤던 뷰포인트를 살펴봤다. 벼랑 밖으로 구조물('전망대'로 불림, '스카이데크'로 부르는 사람도, '스카이워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듯)을 만들어 소금산의 절경을 거의 공중에 떠서 맛보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실수로 아폰(이라 쓰고 ‘아팟’으로 사용하는)을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며 여러 사진을 찍었다. 앞에 선 아주머니는 벼랑 아래가 보이는 이곳에서 난간을 부여잡고 움직이질 못한다. 찔금하게 만드는 곳이긴 했다.


전망대에서 찍은 계곡 모습

이미지출처: http://blog.daum.net/jylee1113/3007?categoryId=61


부랴부랴 내려올 때는 눈이 많이 녹아 여겨저기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등산을 마칠 때쯤이면 항상 새끼발가락이 짓눌리고 비벼져 그런지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고통이 신경을 자극한다. 등산화를 살 때 너무 발에 꼭 맞는 것을 골랐던 모양이다. 디자인 좋은 약간 불편한 등산화와 그냥 그렇게 생긴 그러나 조금은 발이 편하게 느껴지는 등산화 중에서 보이는 것보다 기능이 중하다 싶어 약간 편한 걸 골랐는데도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하산할 때도 발이 편한 만족스러운 등산화를 고르진 못한 것 같다. 산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이 아쉬움은 계속 맛보게 되는 것 같다.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식당으로 향했다. 동태찌개. 후쿠시마 이후 생선을 피하는데, 다같이 동태찌개 먹는데(이미 준비되어 있는 상황) 싫다 할 수가 없어 동태를 먹어야 했다. 국물은 시원하지만 동태살, 동태알은 영 내 입맛에 맞지 않다. 내색 없이 조금만 떠먹으려 했더니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친절을 '극구' 베푸셔서 고기 두 덩이에 알까지 얹어진 내 몫을 받았다. 이후에도 새로 온 사람이라고 고기나 알을 더 챙겨주시려 해서 참으로 난감했다. 알을 피해서 국물만 떠먹은 신참의 고충을 전혀 눈치채게 하지 않았다는 데 위로를 받을 뿐이었다. 은폐술 스킬이 늘었나 보다. 어쨌든 ‘정말 저 배부릅니다’, ‘전 배가 작습니다’, ‘충분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술배를 남겨야죠’라는 연타 클리셰 발사로 ‘추가’의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우리 OO은 뭐 하시는 분이오?’ 앞에 계신 교장으로 정년 퇴직하신 할아버지가 물었다. 한 달에 산을 보통 13-15회 오른다는 분이었다. ‘네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칩니다’라고 하니, 역시나 ‘교수시구나’라고 반응해서,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굳이 ‘아니요. 비정규직 강삽니다’라고 정정해 드린다. 옆에 앉으신 분이 ‘에이 앞으로 교수되실 거니 교수죠’ 한다. 학위를 마치고 가장 적응이 안 되었던 게 그 ‘교수’ 소리다. ‘강사’라고 아무리 정정을 해 주어도 사람들은 그냥 ‘교수’라고 부른다. 그게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차차 알게 되었지만, 늘 부담스러운 호칭이다.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그냥 ‘교수’로 부르고 있다. 난 ‘OO선생’이 차라리 편하다.


그리고 가르치는 분야가 뭔지도 묻고 ‘종교학’이라고 말하니 역시 ‘목사’ 이야기가 나온다. 대충 아니라 얼버무리고 이왕 ‘마이크’를 잡은 김에 옆의 과잉 친절 아주머니께 산행에 대해서 간단히 질문을 했다. 한 달에 산행을 얼마나 자주 하시냐, 뭣 때문에 산행을 하시냐 등등. 아이들 다 키워 놓고 이제 조금 산을 타고 다니는데, 한 달에 3-4번 정도 밖에 못 간다고 아쉬워하신다. 남편이 싫어한다고 한다.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 달에 3-4번 정도 산을 타야 몸이 좀 살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무겁고 안 좋다고 한다.


앞에 앉은 아저씨는 ‘하산주’ 말씀을 하셨다. 우리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한 잔 받으면서 바로 하신 말씀이었다. ‘등산의 맛은 하산주지!’라고 말이다. 소주를 즐겨 마시지는 않는데, 나도 종이컵에 가득 따라진 소주가 너무 달아서 신기한 체험을 하긴 했다. 이렇게 마시다간 실수하겠다 싶을 만큼 술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다행히 곧 귀로에 올라야 해서 시간과 술이 충분치 않아 다행이었다. ‘하산주’의 폭발력은 정말... ‘딱 한 잔의 절제로 그 가치를 배가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갖게 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잔을 놓고 버스로 돌아왔다.


귀로는 잠 속의 헤드뱅잉 시간이었다. 침을 흘리지 않았다는 데에 큰 위로를 삼으며 목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12월 마지막 산행도 기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