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라이브 공연 관람(1)

2019. 1. 19. 00:37여행, 답사, 참관


12월 29일 고양아람누리극장에서 장사익 소리판 공연을 봤다. 대극장의 라이브는 처음이었다. 애초 가족과 보기로 되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공연일이 다가오자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혼자 관람하게 되었다. 애초 장사익의 노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리 가족 중 나밖에 없었으니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연히 들은 장사익의 찔레꽃


장사익이라는 소리꾼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찔레꽃’을 듣고 그냥 빠져들게 되었다.



가사는 중년 혹은 노인이 찔레꽃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고 회안과 슬픔을 느끼며 울게 되면서 한스러운 감정을 배출하고 자기위로를 받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가사의 느낌보다는 장사익의 노래 속에서 그러한 이미지가 더 명확하게 완성된다.



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

...

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찔레꽃처럼 춤췄지/찔레꽃처럼 사랑했지


내게 이 노래의 이미지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했다. 장사익은 윤동주의 ‘자화상’으로 노래를 짓기도 하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자기부정과 자기긍정 사이의 멈추지 않는 진동, 나는 ‘시지프스적 나르시시즘’이라 부르고 싶다. 이런 느낌이 좋다. 안주(安住)가 없다고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변화’가 있고 어쩌면 의식하지 못한 ‘성장’이 깃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장사익의 노래만큼이나 그의 인생역정도 시선을 끈다. 소리꾼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명성을 얻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 인물이 바로 그다. 그가 소리 인생을 시작한 게 나이 45세의 일이다. 소리에 대한 관심을 두고 노력해 오긴 했지만 생업은 다른 것이었다. 그가 소리 인생을 풀어가기 전에 15개의 직업을 전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가 시간에는 소리패를 쫓아 예능인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가 소리꾼으로 데뷔하게 된 계기가 또 극적이다. 소리패 공연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그가 종종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소리에 홀딱 빠져서 그의 뒤풀이 노래는 공연 뒤의 또 다른 공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넋을 빼고 듣던 사람들의 성화로 1994년 연말에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게 크게 히트를 쳐서 그렇게 쭉 소리꾼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늦깎이 소리꾼' 장사익 "굽이굽이 인생을 곰삭힌 소리죠"”).


“저는 인생을 배운 뒤 가수가 됐어요.”


이 말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꿈을 향해서 무거운 한 걸음을 떼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된다.


라이브 공연은, 몇 차례 오케스트라 공연(시립이나 구립 오케스트라의 무료 공연), 지인의 초대로 본 인디 밴드 공연 밖에는 경험이 없던 터라 쉬이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기사를 보고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발심을 해보았다.


노인들과 함께 듣고 같이 감동을 받다



고양아람누리극장과 같은 규모의 공연장도 처음이었다. 가족과 함께 볼 수 있었다면 하고 아쉽긴 했지만, 막상 가보니 거의 대부분의 관객이 노년층이었다. 불혹의 나이도 젊은 것이었다. 나는 2층의 옆쪽의 L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위에 있는 분들은 모두 60대 이상이었다.


스티커로 표시된 자리쯤에서 공연을 봤다.


근처에 앉았던 노부부는 공연을 보다가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가 나오면 별 거리낌도 없이 노래를 부르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그 외에 공연 분위기를 해칠 정도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공연 레퍼토리는 별도로 나누어준 팜플랫에 실려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입수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몇몇 곡이 기억에 남는데, 1부에 ‘희망 한 단’, ‘자화상’, ‘꽃구경’, ‘찔레꽃’ 등이 불렸고, 중간 시간에는 장사익과 공연을 함께 하는 밴드 각자의 소개와 막간 공연이 이루어졌다.


북, 장구 등의 타악기 공연과 해금 연주 그리고 더 솔리스츠의 아카펠라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북소리는 이런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것이 백미라는 생각을 언제나 하게 된다. 해금의 음색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카펠라 무대는 프로선수다운 무대매너와 재미를 볼 수 있어서 귀와 눈이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중간공연이 끝나고 2부에서는 ‘동백아가씨’를 비롯해서 익숙한 대중가요가 여럿 불렸다. 순서가 모두 끝나고 관객의 ‘앵콜’이란 외침에 화답하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간혹 앵콜이 두 세 차례 진행이 되곤 하는데, 아주 ‘피날레임’을 너무 분명하게 하는 방식으로 노래가 끝이 나버려 ‘앵콜’이 다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름 쿨하고 깔끔하게 끝났다는 생각도 들고, 나이 많은 가수와 나이 많은 청중이라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라이브 공연에서 느낀 여러 가지 것들은 따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귀만이 아니라 몸이 소리와 공명하는 경험, 청각-시각-촉각 등의 공감각적인 경험, 여럿이 함께 듣는 경험의 특별함에 대해서 생각 해 본 것을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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