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듣기, 함께 듣기의 경험: 장사익 콘서트 후기2

2019. 1. 23. 19:27여행, 답사, 참관

장사익 콘서트 후기1 에 이어서



몸으로 듣기


공연 레퍼토리 중 ‘꽃구경’이 있었다. 이 곡은 ‘고려장’과 ‘애틋한 자식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어려서부터 ‘효’와 ‘자식사랑’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편이어서 이런 류에 대해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제법 가슴 저미게 하는 노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다. 귀로 들을 때는 그러했다.


이 곡이 공연장에 흘러나올 때는 그래서 시큰둥했다. 이렇게 작위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것과 달리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니 마음이 동요를 일으켰다. 가수의 애절한 음색도 한 몫을 했겠지만 악기의 소리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금소리, 북소리 등이 마치 가슴을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연장 라이브의 현장성이라는 게 소리의 ‘물리적 경험’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사이사이에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자식을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신 그런 보통의 어머니시다. 그 옛날 많은 여성이 그랬듯 배움이 부족하고 힘든 노동 속에서 동생들을 건사하다가 선을 보고 그냥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시달리고 집안일을 하다가 몸에 탈이 나기도 하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매타작하고 부엌 한 구석에서 흐느껴 울곤 하던 그런 어머니. 자식들이 모두 아들들이라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통을 나누지도 못하셨고, 남편은 뱃사람이라 일상의 고통을 그때그때 공유하지도 못하고 보름이나 한 달, 길면 두서너 달을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겨우 하소연을 하며 살아 온 어머니. 장성한 자식들이 이제나 저제나 잘 자리 잡고 살까 근심걱정으로 팔공산에 기도를 드리러 다니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애절할 것도 없는 모성에 대한 감정에도 가슴을 치는 악기와 노래 소리에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기억이 환기되었다. 어느 덧 훌쩍이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극장의 공감각: 시각-청각-촉각 등


좋아하던 곡 ‘찔레꽃’이 불릴 때도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전의 노래들에 이미 한껏 격앙되어 감정의 동요가 일어났던 터라 온 몸을 감싸는 소리의 경험이 ‘준비된 감동’의 이상을 느끼게 했다. ‘스쿨 오브 락’에서 ‘내장을 터뜨리는’ 락의 세계를 이야기하던데, ‘내장’을 끊어 놓는 음악이 락뿐은 아니다. 대극장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은 배와 가슴에 직접 ‘때리는’ 힘이 있다.


녹음된 음악을 들을 때, 특별한 음향 설비가 없다면 대부분 귀를 통해서만 음악을 듣게 된다. 가끔 공연 실황이나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면서 노래를 들을 때 시각을 통해서 음악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명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주로 듣기만으로 음악을 접해 온 나에게 라이브 현장에서의 소리 경험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소리의 청각적 경험만이 아니라 시각적 촉각적 경험도 음악의 경험에서 특별한 감흥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대극장 공연을 통해서 느꼈다. 공간의 규모도 그러한 소리 경험의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좁은 곳에서의 소리 경험과는 분명히 다른 소리의 공간 감각이 느껴졌다.


여럿이 함께 듣기


대극장에서의 소리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여럿이’ 듣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이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간혹 느꼈던 것이었다. 집에서 혼자 볼 때, 별로 웃음이 나지 않던 영화라도 극장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보면 ‘같이’ 웃곤 하게 된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렇게 포복절도 할 영화는 아닌데, 극장에서 보아서 많이 웃었던 영화가 여럿 있었다.


신파조 영화도 극장에서 볼 때와 혼자 집에서 볼 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신과 함께’ 1편을 극장에서 봤을 때, 신파 영화라 식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켠에서 떠올랐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저 멀리 앉아 있는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소리에 취해 있는 분위기는 ‘감동’조차도 전염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집단 경험의 일반화 가능성


이러한 사례는 ‘집단 경험’ 자체의 특별한 경험 양식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인 경험과는 다른 특성이다. 감상과는 다른 것이지만 ‘함께 하는 경험’의 특성에 개인적으로 주목하게 된 계기는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한 경험에 대한 증언에서였다. 예전에 밀양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도 언급한 바(‘밀양 송전탑 사건을 둘러싼 정당성 담론의 전개’)가 있었는데, 경찰 병력 혹은 용역 집단과 대치하고 있을 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려고 뭉치고 있다’는 의식이 공포 반응을 약화시키는 상황이 있었다.


종교적 의례 활동도 그러한 사례로서 주목된다. 뒤르켐이 일찍이 ‘집단 열광 상태’collective effervescence로 개념화한 바 있다. 집단 경험이 만들어 내는 의식 상태를 그러한 극단적 상태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이렇게 연결되는 부분들은 흥미롭다.


최근에 Philip Cho 등의 “Groups and Emotional Arousal Mediate Neural Synchrony and Perceived Ritual Efficacy”라는 글을 읽은 바 있는데, 해당 글은 ‘의례’의 측면보다 ‘공동 경험’의 측면의 특이성을 뇌파로 규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집단 경험’이 ‘개인 경험’과는 특별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구체적인 의미와 메커니즘은 별개로 하고, 신경생리학적 증거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부분은 ‘종교적 인간’을 이해하는 데, 앞으로도 주목될 필요가 있는 연구 테마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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