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나의 산 이야기

2019. 4. 12. 19:02여행, 답사, 참관

모욕감 짤이나 '굴욕감'으로 응용

산은 나에게 굴욕감을 준 곳이었다. 그것은 20대 초반 군대에서의 일이었다. 나는 강원도 철원의 동쪽 끄트머리 산골짜기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의 거의 대부분의 훈련은 근처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곤 했다. 별로 체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완전군장으로 산 중턱의 진지까지 오르고 나면 시야가 흐려질 만큼 숨이 찼다.

이런 관심


일병 때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한여름 훈련, 60미리 박격포를 짊어지고 진지에 오르다가 그만 낙오하고 말았다. 후임들도 있었던 때로 기억한다. 몇몇 고참들로부터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훈련 후 부대로 복귀해서는 낙오 없는 강철 체력 만들기를 위한 고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후임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런 수치를 겪고도 폐활량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훈련 때마다 이를 악물고 산에 올라야 했다. 너무 힘들 때는 길옆 도랑이나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강원도와 산을 싫어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산이 그렇게 악연의 장소는 아니었다. 달동네라 불릴 수 있을 법한 언덕에 살던 나에게 뒷동산은 신비로운 놀이터였다. 풀이 높게 자라는 여름에는 풀숲에 비밀 아지트를 만들 수 있었고, 큼지막한 전나무에 올라 산 밑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보지 않았던 깊은 산길을 탐험할 수 있었으며,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비닐포대 하나를 들고 올라가 눈썰매를 탈 수 있던 그런 곳이었다.


어렸을 땐 어엿한 산으로 느껴졌던 그곳은 어른이 되어 가보니 그저 언덕(해발 70m 내외)에 불과했다. 그러니 제대로 산다운 산을 경험한 것은 군시절이었던 셈이다. 그곳의 산들은 뼈를 때리는 바람과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길과 그 산 길 위에 무수히 많았던 돌맹이들로 기억된다. 놀이동산 같은 뒷동산의 추억은 강원도의 산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산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그런 곳이 되었다.

 

불혹이 가까워서야 새로운 산의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 고집스럽고 그다지 성숙하지 못한 한국 남자로서 원만하지 못한 결혼생활 중이었고, 답사를 떠나는 어느 날에도 한 바탕 전쟁을 치른 뒤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야 했다. 향했던 곳은 태백산이었다. 답사 이틀 째 적조암이란 곳을 답사하러 함백산 자락으로 향했고, 1km 남짓한 산길을 올라야 했다. 답사 내내 머릿속이 번잡스러웠지만, 거친 산길을 오르느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산을 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곳은 산 속의 작은 분지였다. 하늘은 새파랗고 사방의 산과 초목은 초여름의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고 상쾌한 녹음을 발하고 있었다. 내내 무거웠던 마음이 갑자기 뻥 뚫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시원하고 산뜻한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본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적조암에서


그 답사는 산에 산 사람들의 모습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산은 그대로 있었다. 산을 신성시하는 사람들도 거기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산을 신성시 여긴 방식은 산 아래 사람들의 살이 방식이 변하면서 요동쳤다. 그 흔적을 태백산 자락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산자락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큰 나무는 산신령께 기도하는 곳이 되는데, 산자락 마을의 구조가 바뀌면서 기도터들도 이쪽저쪽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한편 어느 산마루에 산령각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은 옛날 봇짐장수들이 산너머로 물건을 사고 팔러 가는 길의 태백산 첫 고개로 힘들게 산을 올라와 한숨을 돌리면서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산령각 옆 표지판
산령각, 출처: '가산골'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pty8489/523


신성한 산의 경험은 등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더 이상 산은 내게 굴욕감만을 주는 곳으로 기억되지 않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건강을 위해서 산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신성한 산을 오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냥 아름다운 자연을 순수하게 경험하게 되는 기쁨을 느끼기 위한 등산이기도 하다. 또 산행은 ‘함께 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각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쉽게 느끼기 어려운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오른다고 하기도 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산, 그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산의 경험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는 요즘 그게 궁금해서 내 고장의 한 산악회에서 틈 날 때마다 ‘함께 산에 오르는 경험’을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이 외에도 내게는 산과 또 다른 인연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한때 매달 단골무당을 따라 팔공산으로 기도를 하러 다니셨다. 지금은 무당의 단골들이 나이가 들어 산에 오르는 게 어려워져 중단하셨다고 한다. 팔공산은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갓바위가 영험하여 한 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이 회자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한 해 25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제1의 기도처’라는 수식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장성한 자식들, 손주들, 그리고 힘든 뱃일을 계속하고 있는 남편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해 오셨다. 모정의 따스함이 스민 소망이 깃드는 곳으로서의 산도 나의 산 기억 중 하나다. 

출처: 대구MBC http://www.dgmbc.com/TV/ston/ston.html


불혹을 넘기고 나서 새해가 시작될 때면, 나도 어머니처럼 산에 올라 가족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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