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시간, 달력, 캘린더: 음력 이야기(1)

2019. 5. 3. 23:08실종리폿/시간 이야기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2)] 음력 이야기 (1): 달의 시간, 달력, 캘린더

인간의 시간이 기본적으로 자연의 시간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연의 주기에 맞춰서 사는 게 생존의 기본일테까 말이다. 인간의 생체시계도 자연환경에 맞춰서 시간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201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생체시계 연구자들에게 돌아간 바 있다. 자연의 일일 순환에 맞춘 생체 리듬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규명한 연구였다고 한다. (참고: "생체 시계의 비밀을 밝힌 과학자들", 다음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3)’은 이 주제를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생체시계를 고려하면 하루의 리듬은 태양의 위치로 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몸의 대응 메커니즘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한 달은 어땠을까?

한 달의 리듬도 관측하기 쉽고,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는 시간 단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달이 찼다가 기울고 다시 차면 한 달의 흐름을 생각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1년의 감각은 날과 달에 비해서는 둔한 감각이다. 태양의 고도,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 등에 대한 상당히 많은 데이터를 알고 있을 때라야 정확하게 1년의 사이클을 그릴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시간에 기초해서 만든 인간의 시간의 기록물을 ‘달력’이라 부른다. 달력은 일정 기간의 시간 흐름을 하루 단위, 한 달 단위, 일 년 단위로 기록해 놓은 문서(철)이다. 그런 인간의 시간 체계를 역(曆)이라고 하고 그것을 묶어 놓은 것, 지금의 ‘달력’과 같은 것을 ‘책력’(冊曆)이라 한다. ‘역서’(曆書)도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이지만 역법 체계가 기술된 서적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달력’이란 말이 자연스러운 이유?

왜 ‘책력’이라고 하지 않고 ‘달력’이라고 썼을까? 아마도 역서 체계상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게 ‘월’ 단위로 만든 ‘월력’이 많이 사용된 탓일 것이다. ‘달력’이라는 표현은 구한말 한글 신문에서 보이는 걸로 봐서는 예전부터 한자로는 ‘月曆’이나 ‘曆’으로 쓰고 ‘달력’으로 읽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해당 표현이 조선시대 한글 텍스트에 나타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일력(日曆)은 알 수 있는 시간 길이가 짧고, 연력(年歷)은 너무 정보가 많아 번잡스러웠을 듯하다. 연력에 월일 정보를 모두 담았다면 말이다.

하루의 시간 감각은 주로 태양을 보고 정했겠지만, 일정 기간의 시간 단위라면 ‘달’이 주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달은 일정한 시간 간격 동안 모양이 일정하게 변하는 특성(위상 변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의 위상 변화

 

고고학적 유물로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에 달의 운행이 기록된 예가 있다. 이것은 약 2만 5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69개의 점이 새겨져 있다. 

 

Blanchard Bone  - Abri Blanchard, Dordogne, France. Archaeological Museum
Aurignacian Lunar Calendar / diagram, drawing after Marshack, A. 1970

 

이런 흔적들로 보아도 인간이 일정 기간의 시간 체계를 고안하는 데 달의 천체 운동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시간관념에서 ‘달’의 중요성은 그저 ‘달력’이라는 표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영어 ‘calendar’는 어떨까? 어원론에 따르면 ‘거래장부’를 나타내는 말이 달력의 의미로 굳어졌다고 한다. 부채가 만기되고 잔고가 계산되는 달의 첫 날인 ‘calendae/kalendae’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또 그 말은 로마에서 카피톨 신전의 사제가 새 달의 첫 날을 선포(calare)하는 데서 나온 표현이라고 한다. 달 관측을 통해서 시간을 구분한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적당한 시간 구분 단위로서 ‘달’은 천체, 역(曆)의 명칭으로서 우리에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길어지니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음력 1월 1일, '전통의 시간'으로서 음력 등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