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뽑기’

2019. 12. 24. 08:41실종리폿/미신은 살아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종교적 행위 중의 하나가 이 ‘말씀 뽑기’다. 최근에 스터디 모임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이제사 찾아 보았다. 연말 혹은 신년에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다. 구글링만 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주술적이고 샤머니즘적이고 이교적인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 혹은 신년 예배에서 ‘말씀 뽑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런 예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포춘 쿠키’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포춘 쿠기’ 속 운명의 메시지로 성경 구절을 사용하는 경우도 눈의 띈다.

개신교도들이 이런 ‘미신적 행위’를 일삼는 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위선자라느니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년 점’의 풍습이 예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 한국 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신년 운세를 점치는 의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런 행위는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적인 종교적 특성이 반영된 행위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신년과 의례 그리고 점치기


시간의 마디, 특히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나뉘는 마디는 많은 의례가 행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이후의 시간, 특히 한 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의미에서 특히 그렇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이 시간에 한 해의 행운을 불러올 수 있는 의식을 수행했다. 그러한 의식들은 대체로 정화의식(액운 제거), 특별한 음식 섭취(주술적 의미), 고행(난이도 있는 과제 수행), 특정한 의복 착용(주술적 의미), 특정한 행동 수행(주술, 행운), 그리고 무작위적 제비뽑기(점치기) 등이다.

참고: “50 New Year Traditions From Around the World

꼭 어느 한 양상의 의식만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이런 여러 양상의 의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의 뜻을 확인할 때, 제비뽑기 식의 점치기 방식이 사용된 것은 인간사에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마녀 재판'에서 시죄법으로 사용된 '물에 빠뜨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죄가 있다면 물에 뜨고, 죄가 없다면 물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는 논리로 시행된 방법이다(결국 죽는다는 건 같음. 빠져 죽냐 타 죽냐의 차이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해의 행운을 비는 신년 의례는 양력 1월 1일보다는 우리가 ‘설날’이라고 부르는 음력 1월 1일, 혹은 정월대보름, 혹은 춘분 즈음 혹은 봄의 절기 의례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농경의례와도 어느 정도 관련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새해에 좋은 기운을 받고자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일출 맞이를 하며 태양을 바라보고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한다.


이런 행동 방식의 ‘원초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말씀 뽑기’는 단순한 미신은 아니다.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는 마디의 시간에 ‘주술적 의례’(주로 행위자의 안녕을 기원하는)를 요구하는 심리는 개신교인 이전에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종교적 욕구라고 할 수 있겠다.


가톨릭의 사례


찾아보니 가톨릭계에서도 비슷한 행위가 있는 것 같다. ‘성령칠은뽑기’ 혹은 ‘성령칠언말씀뽑기’라고 불리는 행사다. 성령강림대축일(예수 부활 후 7주가 지난 다음 날, 오순절)에 하는 행사라고 한다. 신년의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능상에서는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족: 교리적 신앙과 원초적 종교심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통 교리적 신앙에 입각해서 원초적 종교심이 미신으로 치부되긴 하지만 종교서비스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원초적 종교심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부적, 주술적 신행이 교리 종교에서 횡행하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다. 종교의 쇠퇴 과정에서 이런 것이 ‘타락상’이자 ‘문제’로 지목되곤 하는데, 무조건 맞다고 볼 수는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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