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동지(winter solstice): 12월 25일, 어떤 노는(?) 날인가

2019. 12. 29. 15:24실종리폿/시간 이야기

어른이 된 내게 크리스마스는 ‘빨간날’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점점 그 이상의 의미가 다가온다. 일종의 ‘family day’라고 해야할까? 아이들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뭔가를 생각해야 하는 날. 물론 그런 ‘의무감’에 내가 충실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의무감을 느낄 따름이다. 자신이 나쁜 남편/아빠인 것을 아는 나쁜 남편/아빠일 뿐이다.

내게도 분명 크리스마스가 신비로운 날, 기다려지는 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산타클로스를 믿었는지, 그날 무언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었는지는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에 대한 설레임이라는 게 어렸을 때는 있었고 기억된다. 아, 교회에 다닐 때, 특히 짝사랑하던 소녀가 있었을 때는 그런 설레임이 확실히 있었다. 20대 전까지의 일이었던 것 같다.

TV에서 재밌는 프로그램이 한다든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명분이 있다든지(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를 꿈꾼다든지 하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교회를 다닐 때에도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의미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일롱 신자였던가?

연인이 없을 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입장이 아니었을 때, 이 휴일은 그저 쓸쓸함을 자아내는 날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나자 이 날은 가족을 위한 날이 되었다. 그 외에 이 날의 어떤 가치라고 한다면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의미에서 유지된다기보다는 인간의 시간 관념과 연관된 날로서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기원 Origin of Christmas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로마의 동지 축제에 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다. 그래서 로마의 태양신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이교적 풍습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 기독교계 신종교에서는 현대 개신교 및 가톨릭이 타락했다는 증거로 ‘크리스마스’를 들기도 한다. 이 날을 여전히 ‘예수의 탄생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축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Christ’와 ‘mas’의 합성어다. ‘그리스도+축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 탄생일을 사람들이 기념하는 날이라는 의미겠다. 그런데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에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으며, 역사학자/성서학자들에 의해서 추정되는 날짜는 이 날짜가 아니다. 조셉 피츠마이어의 경우 기원전 3년 9월 11일로 추정한다.

썰1: 이교도 신앙의 기독교적 전유(이교도 신앙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으로 세탁했다)

어쨌든 기독교 이전에 로마에서 동지 전 며칠 동안 사투르누스Saturnus 신을 기리는 축제인 사투날리아Saturnalia 기간(12월 17일에서 23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투르누스(영어로 새턴Saturn, ‘토성’의 영어명이기도)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에 해당하는 신이다. 그리고 12월 23일은 로마 사람들이 믿었던 태양신 미트라스의 탄생일로 기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유입된 이후 그러니까 약 4세기에 이르러서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기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회자되는 설 하나는 당시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로마 제국의 이교도들을 이교 풍습에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의례로 효과적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의례의 대체’를 시도하여 로마의 동지 축제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이 설에 정보가 불일치하는 부분들이 조금 있다. 미트라스신의 탄생일을 25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미트라스신에 대한 숭배 의식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2월 25일은 일반적인 태양신 탄생일로 기념되었다는 것이다(wikipedia〉Mithraism〉rituals and worship).

썰2: 세계 창조의 날로 ‘춘분’을 고려한 추정으로 예수 탄생일 12월 25일이 나왔다

성경의 창조가 시작된 날을 ‘춘분’(spring equinox)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창조 4일째(3월 25일 쯤), 빛이 만들어진 날에 예수가 잉태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9개월이 있다가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이다(12월 25일). 신년 전후로 예수의 탄생일을 추정하는 전통은 그의 침례일(1월 6일)을 기준으로 그의 탄생일을 기념한 전통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Encyclopædia Britannica〉Christmas).

초기 기독교사에서 예수의 탄생일 의례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순교자나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 ‘순교한 날’이 진정한 기념할 날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초기 교부들은 생일을 따지는 것을 이교적 관습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등장한 것은 221년 섹스투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Sextus Julius Africanus, 3세기에 활동한 기독교 역사가, 성서 기록 기반 기독교 연대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에 의해서였다고 한다(아마도 그의 책 《연대기》Chronographiai(221)에서). 

아마 썰2에 의한 계산과 썰1에 의한 정당화가 순차적으로 예수 탄생일 비정과 관련해서 나타나지 않았을까? 실제 어떻게 예수 탄생일 비정이 이루어졌는지 확정된 정설은 없는 것 같다.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썰1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입장에서 상당히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배경설명이겠다.

그런데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여기고 의례를 통해 널리 기념하게 된 것은 상당히 후대(9세기)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난일(성 금요일Good Friday,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 부활절 전 금요일)과 부활절(Easter, 예수가 부활한 날, 춘분 후 첫 보름달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함*)에 비해서 중요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활절 날짜 확정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춘분 후 첫 보름달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다. 이 기준이 율리우스력이었는데, 이게 천문현상과 미세한 오차(달력의 시간이 지구의 공전 시간보다 긴 문제)가 있었고, 16세기에 이르면 달력상의 춘분과 관측 춘분 사이에 오차가 10일 정도가 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게 ‘그레고리력’이다. 당시 오차 10일을 없애고, 4년 1회 윤년을 두되 100년 단위에서는 평년으로 다만 400년 단위는 윤년으로 두는 400년 사이에 윤년을 97회만 두도록 하는 역법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정교회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으로 부활절을 산정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기념일이 날짜를 고정하는 것인데, 부활절은 요일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서 기념하기에 좋은 요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부활절 날짜 산정 방식이 복잡해진 것이 아닐까?

중세 기독교의 주요 전례로 정착되었다고 해도 ‘동지 축제’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17세기 영국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는데, 영국 청교도 혁명으로 수립된 청교도 정권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시켰다(1652년).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문란하게 지내는 크리스마스의 축하 잔치가 기독교 정신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감시를 피해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1656년에는 런던 인근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폐지로 인해 폭동일 일어나기도 했다. 왕정이 복고되고 크리스마스도 부활했다.

크리스마스 현대적 관습(크리스마스 트리, 캐럴, 선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등)도 기독교와 크게 관련이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경우 유럽 북부의 상록수 가지를 이용한 장식 관습이 독일 등지를 거쳐 미국에 뿌리내리게 되는, 16-19세기에 걸친 전파의 산물로 많이 설명되고 있다. 캐럴도 유럽 이교도의 동지 축제 노래의 기독교화 산물로 이야기된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본주의화의 산물로서 산업혁명 이후 소비사회의 등장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이야기된다.

Louis Prang의 크리스마스 카드

산타클로스, 성 니콜라우스까지 들먹이며 기원을 이야기하게 되지만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성 니콜라우스에 기반한 선물을 주는 존재에 관한 전설이 크리스마스와 특별히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미국에서 여러 작가들에 의해서 수염, 뚱뚱한 몸, 순록을 타고 선물을 전해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빨간색 옷을 입은 산타 이미지를 정형화한 인물로는 루이스 푸랭(Louis Prang)이 언급된다. 그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으로 그가 제작한 카드에 ‘빨간 산타’ 그림이 담겼다. 산타클로스의 상업적 대중화는 1931년 코카콜라의 광고가 회자된다.

크리스마스, 상업화? 비기독교화? 아니아니아니죠, 원래 그 모습대로

현대사회에서 크리스마스의 흥행은 기독교적 가치 때문이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 사이의 유대관계 향상 혹은 유지를 위한 상징적/상업적 교환의 절기의례로서 적합성을 갖기 때문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동지’, 혹은 ‘연말’이라는 시간적 분절이 발생시키는 ‘새로운 시간의 창조’, 그것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시간에는 축제를 통해 그 동안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과 관계를 재점검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맞설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예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름’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이 휴일의 명칭 탓에 특정 종교의 교조를 떠올리고 특정 종교의 신화적 사건을 되새기는 일이 사회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시간의 분절기에 사람들이 축제의 감각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를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이, 연말연시의 ‘들뜬’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만들어 내는 축제의 감각에 덧칠되어 기생하고 있다고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코드가 연결되는 방식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일 것 같다. 종교인들의 전유는 시효가 있을테지만, 일반 사람들이 축제로 기념하는 일은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mazon.ca/Shortest-Day-Susan-Cooper/dp/0763686980
이미지 출처: https://www.booking.com/articles/where-to-celebrate-the-winter-solstice-in-the-usa.html

참고자료

브리태니커, 'Christmas'(https://www.britannica.com/topic/Christmas)

위키피디아, 'Christmas'(https://en.wikipedia.org/wiki/Christmas)

"크리스마스 유래와 역사"(https://www.voakorea.com/a/a-35-2009-12-22-voa24-91403564/1327861.html)

"Santa History"(http://www.beingsantaclaus.com/history.htm)

"Christmas-Day in the Commons, 1656"(https://thehistoryofparliament.wordpress.com/2014/12/23/christmas-day-in-the-commons-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