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개념 아재의 싱크대 수전 호스 교체 도전기

2020. 1. 23. 13:10etc/삶에 관한 단상

박사학위와 함께 시작된 설거지 집안일(설거지와 공부) 덕분에 싱크대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은데, 어느 날부턴가 묘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불안한 마음에 싱크대 아래쪽 문을 열고 안쪽을 확인하니 호스를 타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싱크대 샤워기를 잡아 빼서 물을 틀어보니 호스 부위에서 물이 많이 새고 있었다.

이렇게 생긴 것이니 견고하다 생각했었는데, 이 부위가 물이 새다니. 해당 수도꼭지를 불과 2,3년 전에 교체했던 터라 더 의아하게 여겨졌다. 근처 인테리어 가계에서 8만원(출장비 포함) 정도를 들여서 교체했었다.

여러모로 확인해 본 바로 호스에서만 물이 새는 것으로 보였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호스를 갈아보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이 일에 얼마나 큰 난관이 숨어있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을 불렀다면 4,5만원이면 해결될 일이긴 했을 것이다. 아니 호스만이 아니라 수도꼭지 전체를 갈자고 할 개연성도 있었으니 8,9만원이 들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사람을 불러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마나님의 눈치가 ‘너 그 정도도 못하니?’라는 것이어서... 점수를 좀 따 볼까 싶어서 무리를 했다)

1일차
어디를 분리하면 좋을까 하고 보니, 샤워기 부분과 수도와 연결된 중간 연결부를 분리하면 호스만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정확한 추론. 훗)

자, 연장을 준비할 차례다. 최소한 도구 두 개가 필요해 보였다. 샤워기와 호스 연결부위는 샤워기 헤드를 돌리면 쉽게 분리할 수 있으니 도구가 필요치 않지만, 호스와 수도 연결부는 상부와 하부를 따로 잡고 너트를 풀러야 하기에 스페너와 집게 같은 게 필요했다.

분명 집에 몽키 스페너와 너트를 잡고 돌릴 수 있는 집게 같은 공구(나중에 확인한 명칭은 ‘워터펌프 플라이어’water pump pliers)가 있었던 것 같았기에.

우리 집에는 사실 공구가 별로 없다. 어딜 수리하고 그래 본 기억도 없으니. 망치도 없다. 누가 버리고 간 걸 쓰던 게 있었는데, 이내 망가져서 내다 버렸다.

있는 건, 니퍼(‘커팅 플라이어’cutting pliers, 20대 때 사둔 것, 무슨 목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써 본 적도 없다), 펜치(‘컴비네이션 플라이어’combination pliers, 이것도 산 게 아니라 이사갔던 어느 집에 버려져 있던 뻑뻑한 녀석을 그냥 들고 있는 것), 육각봉 렌치(세트1개, 왜 있는지 모름, 자잘한 여러개, 아이들 인라인스케이트 등 물건을 살 때 딸려온 것들), 드라이버(1개만 쓸 수 있고, 나머지 1개는 끝이 뭉게져서 쓰지 않음. 송곳 대용으로 쓰려고 놔 뒀지만 쓸일이 없음), 몽키 스페너, 워터펌프 플라이어 정도다.

몽키 스페너는 끝내 찾지를 못했다. 마지막으로 본 게 1,2년 전인 듯하다. 아이들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로 간 것인지. 이런 걸 가지고 잘 노는 둘째가 가지고 놀다가 제 위치에 다시 놓지 못해서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을 하지만 당사자는 역시 강력 부인했다(난 아직도 그 녀석의 소행으로 생각한다. 이사갈 때 아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뻑뻑한 펜치(컴비네이션 플라이어)와 워터펌프 플라이어를 들고 싱크대 배수관 뒤 수도 호스 연결부 분리를 시도해 보았다. 좁은 공간에서 꽉 조인 너트를 푸는 미션이 그렇게 힘들 줄은...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보면서 하자니 손이 움직일 공간이 없고 손만 넣어서 하자니 잘 보이질 않고. 15분 동안 헛손질을 하며 끙끙대다가 육두문자를 발사하고 포기.

으악, 사람쓰면 간단한 일을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아니 이런 집안일 하나 해결하지 못하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접근법이 잘못된 것 같았다. 좁은 공간에서 연결부 너트를 풀려고 끙끙댈 것이 아니라 저 라인 자체를 개방된 공간에 빼 놓을 수 있으면 일이 간단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여러가지-형태, 쓰임새, 기능, 명칭 등-를 파악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 같다)

수도꼭지 부분을 싱크대에서 분리하기 위해서는 수도의 냉수 및 온수 연결부를 배관과 분리하면 될 것 같았다. 펜치와 플라이어로 역시 시도해 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연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도구를 구하지 못한다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2일차
싱크대에는 설거지감이 한 가득 쌓여있다. 아내가 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묻기에 오늘 안에 끝내겠노라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고치든, 사람을 부르든.

공구 대여는 근처 친하게 교류하는 ‘아이스크림 아저씨’(아이스크림 유통업 종사)에게 받기로 했다. 사무실에 찾아가 몽키 스페너를 빌려왔다. 냉동창고와 사무실로 이루어진 업체라보니 아담한 크기의 스페너가 아니라 3kg넘게 나갈 것으로 추정되는 큼지막한 몽키 스페너 밖에 없었다. 다른 건 고정형 스페너여서 대응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하고. 너트 풀기 작업 강도가 덕분에 더 커졌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팔에 근육통이 남아 있다.

플라이어와 스페너 조합으로 온냉수 연결부 분리는 쉽게 처리되었다. 그리고 생각 없이 수도꼭지 부분을 들었지만 빠지지 않았다. 싱크대 부분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이 당연한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오돌토돌하게 손으로 잡기 돌리기 좋게 되어 있어서 잡고 돌려 보았다. 그러나 꿈쩍을 하지 않았다. 한 10여분을 끙끙대다가 포기했다. 

한 명이 더 있어서 아래서 꽉 잡고 수도꼭지 부분을 반대로 밀면 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침 아이들이 나가 놀고 있는 때여서 시도해 볼 수 없었다. 아,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싶었다. 아내에게 연락을 해 사람을 불러 일처리를 하자하고 미뤄둔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밥을 먹고 나니 아이들이 들어왔다. 큰 아들(이미 많이 커서 나와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몸집은 이미 나보다 크다. 몸무게를 앞지른지 한참 되었다. 이제 중1인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아들하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수도꼭지 부분만 싱크대에서 뽑아 내면 수도부와 호스 연결부 분리가 가능할 것이라 여겨졌기에.

나는 플라이어를 이용해서 아래쪽 부분을 꽉 잡고 아이에게는 수도꼭지 부분을 오른쪽으로 밀게 했다. 몇 번 시도하고 손으로 다시 돌려보길 반복하는 일을 계속했다. 한 10분여 끙끙대니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요즘 모델’은 손으로 풀기 쉽게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요즘 모델’을 아들 녀석과 함께 한참을 끙끙대서야 풀 수 있었다. 다른 연장 없이 손으로 풀 수 있다는 게 쉽다의 기준이였던 건지. 그러고보니 플라이어를 이용해서 잡고서야 돌릴 수 있었으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제엔..

꾸역꾸역, 만 하루 반 만에 수도꼭지부를 싱크대에서 들어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궁리해야 했다. 너트가 어느 호스와 연결된 것인지 몰라 위쪽을 플라이어로 잡고 스페너로 너트를 돌려보고 아래쪽을 잡고 너트를 돌려보고 하는데도 잘 분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여기까지 분해했는데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 좌절감이 밀려왔다. 
한참을 연결부를 보면서 관찰을 해 보니 너트에 들어간 볼트부가 호스 쪽으로 연결되었고, 볼트의 홈 사이 평평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레카! 그 평평한 부분을 플라이어로 잡고 스페너로 너트를 돌리면 분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또 몇 분을 잡고 놓치고를 반복하면서 겨우 분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으, 드디어 분리를 해 냈다.

그런데 몇 가지 난관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온수관 냉수관이 모여 호스로 물을 보내는 수도꼭지 부분이 좁기 때문에 호스를 빼고 다시 넣는 게 용이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고지가 바로 앞이라 생각하니 이것저것 따지고자시고 할 게 아니라 하고 보자는 생각에 그냥 잡아 뺐다. 좁은 공간에 걸려서 쉽지 않았는데, 몇 번 잡아 빼니 빠져 나왔다.

어렵게 빼니 넣을 때가 걱정이었다. 이런...

동네 철물점에 가서 ‘비싸게’ 호스를 구해왔다(1.2만냥). 아저씨한테 눈탱이를 당한 듯. 검색해 본 가격보다 두 배 이상 돈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서 살 때는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 비싼 녀석을 들고 일단 수도꼭지부 좁은 구멍과 사투를 벌였다. 조심조심 넣어보고 불을 비춰서 길도 찾아보고 철사 옷걸이를 펼쳐서 꼬챙이로 만들어 반대편 구멍으로 넣어 걸어 빼려고 시도도 해 봤다.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의 손은 계속 호스를 구멍 속으로 집어 넣고 흔들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 포기하고 사람을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동네 철물점 아저씨 출장비는 2.5만냥이라고 했다.

망연히 호스를 움직이다가 보니 슬몃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살살 달래서 조금씩 밀어넣으니 반대편으로 연결부가 나왔다. 감격할 새도 없이 호스 교체의 막바지 작업으로 돌입했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다시 수도꼭지부를 싱크대에 연결해 싱크대 아래쪽에서 연결하려는 우를 범했다. 한 번의 시행착오를 그렇게 겪고 분리했던 대로 싱크대 위쪽에서 연결부를 결착했다. 호스가 함께 돌기 때문에 꼬이게 되었는데, 일단 다 연결하고 풀자 싶어서 연결된 꼬인 상태로 싱크대와 결합 작업을 시도했다.

다시 이 부분. 일단 손으로 맞추어 돌려 넣기로 했다. 큰 아들이 위에서 수도꼭지부를 잡고 나는 아래서 연결부를 돌려 맞추기. 5-10분 정도 돌려야 했다. 돌리고 쉬길 반복하면서. 큰 아들이 왜 이렇게 힘들어 하냐며 자신이 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가 위에서 잡고 아이가 연결부를 돌렸다. 아이는 바로 GG를 쳤다. ‘아빠, 안 돌아가는데...’ 아직 나만큼은 힘을 내지 못하는 아들이 아쉽기도 하면서 ‘아빠가 아니면 안 되지’하는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시 자리를 바꾸어 손으로 되는 데까지 돌려 넣고 아까 한 것과는 반대로 플라이어로 연결부를 내가 잡고 수도꼭지부를 아들에게 왼쪽으로 돌리게 했다. 그렇게 몇 분을 하고, ‘아 이제 더 이상 못해’할 정도로 힘에 부칠 때 ‘그만’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연결됐어’라고 선언해 버렸다. 대충 쓸 수 있으면 되지, 라고 자위하며. (정말 대충 쓸 만한 수준이다 -_-;)

비비꼬인 샤워기 호스를 샤워기 헤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풀어 놓고 무게추를 다시 연결해 놓았다. 냉/온수관 연결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플라이어로 한쪽을 잡고 스페너로 너트를 돌려 결착. 이것저것 하며 체력이 방전된 상태라 쉬운 작업이었지만 몇 번을 쉴 수밖에 없었다. 허덕허덕 연결을 마치고 물을 틀었다. 물은 잘 나왔다. 싱크대 아래쪽으로 새는 물도 없다.

작업 완료 후 모습
교체한 호스 형태

만 이틀, 들인 시간은 8시간 내외. 이 날 보통 때보다 일찍 잠들었다. 역시 노동의 피로는 수면장애 따위를 날려버린다.

이틀의 고생으로 아내의 눈웃음 섞인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 점수땄다.’

난 아내에게 우리 큰 아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해준다. 아내는 큰 아들에게 궁디팡팡을 시전한다.

싱크대 호스 교체라는 비교적 가벼운 일을 해결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의미, 가치, 이런 걸 떠나서 구조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의 절차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구조 파악에 도움을 받았지만 ‘문제 해결의 절차’는 자세하게 나와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실제 내가 처한 문제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참고가 되지 않았기에 현장에서 내가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경험하지 않은 일’, ‘개념이 없는 일’을 시도해서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무경험이 유경험으로 넘어갈 때 얻는 성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도. 더욱이 그 문제를 가족 구성원이 ‘함께’ 해결했을 때, 관계의 질을 제고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마저도.

그러나 다음에는 사람을 부를 꺼다.

1 2 3 4 5 6 7 8 ···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