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저를 성폭행하셨습니다." │논란의 법륜의 즉문즉설에 대해

2020. 9. 7. 22:54글읽기

노이질러를 통해서 법륜을 다룬 적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노이질러 해당 편을 '팟빵'에서 들을 수 있다.

그 편에서 어릴 때 성폭행 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스럽다는 30대 여성 질문에 대해 즉문즉설한 사례를 다뤘다. '좋은 선생의 이야기도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해당 여성의 질문에 대한 법륜의 즉설이 '문제적인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해당 즉문즉설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에서 찾았다.

이 밖에도

"모든 질문에 쉽게 답 내놓은 법륜스님... 곤혹스러웠다"(오마이뉴스)

친부 성폭행 즉문즉설 사례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다.

단적인 예

어쨌든 정토회 페이스북이나 공식 블로그에서 해당 글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정토회 페이스북에는 관련 링크가 남아있다. 그러나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다음 첫 화면'으로 이동한다.

해당 게시물의 링크를 클릭하면 '다음 첫 화면'으로 이동

즉문즉설, 많은 강연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비공개로 되어 있다. 이로 보면, 해당 즉문즉설이 얼마나 문제가 되었던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정토회 공식 루트로는 해당 '즉문즉설'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찍어 준 좌표로 가 보니 이렇다...

다행히 '넷트는 광대'했다. 정토회 페이스북에 링크된 글이 스크랩 되어 있었다.

[스크랩] 아버지가 어릴때 저를 성폭행 했어요, 어떻게?

이 외에도 스크랩 게시물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구글, 네이버, 다음 검색: "아버지가 어릴때 저를 성폭행 했어요")

일단, 스크랩된 당시 스크립트로 추정된 원고를 pdf로 저장해 두었다.

법륜 즉문즉설 2011-09-30 부산 벡스코.pdf
0.08MB

법륜의 메시지는 '심적으로 힘들다'고 말하는 질문자의 '마음'을 고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해자 원망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좋게 먹고 마음을 다스려라. 그렇게 행복을 얻으라'

거의 이런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불교적인 사고의 전환법이고, 그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적 세계관을 긍정하고 법륜의 '의도'를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이 취지를 십분 납득한다.

가해자로서 아버지를, 아버지와 남자로 구분하고, 성폭행을 가한 이를 '남자'에 국한시키고, 아버지는 아버지로 대하며, 그런 피해 없었던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귀히 여기라는 이야기는 법륜의 의도와는 별개로 듣는 이에 따라서는 기괴한 메시지로 들릴 수 있다.

'타조의 숨기'를 떠올리게 했달까? 천적이 가까이 오면 땅에 머리를 박고 숨는다는. 위협이 상존하지만 자기만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여기는 '정신승리'의 기술을 보여준다('타조 전략'ostrich strategy이라는 개념, 개인이나 조직의 지속을 위협하는 부정적 정보를 무시하는 태도를 말함).

실제로는 '아 모르겠다'하고 숨는 반응이 아니라 은폐 및 천적 탐지를 위해 머리를 땅에 박는다고 한다.
출처: https://medium.com/@coffeeandjunk/cognitive-bias-ostrich-effect-583ed8f243bc

'가해자'를 지우고 '아버지'로서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처방은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건' 자체를 지우고 가해자를 가해자로 여기는 마음까지도 지우고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스님의 즉설은 '교묘한 2차 가해'라고 판단될 수 있다.

물론 스님은 "그의 행위가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동시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그 생각이 나를 더러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발상의 전환은 항간의 상식 범위를 훌쩍 넘어서 버렸다.

의도만 가지고 메시지의 가치가 평가되는 건 아니다. 메시지의 '효과',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포함된다. TV에도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통해서 삶을 반추하는 상황이라면 그 '효과'에 대해서도 책임감 있게 대응해야 하지 않을지.

'일체유심조'의 마법에도 한계는 있다. 내 마음에만 일어나 고통을 빚는 것이라면 마음을 바꾸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지만, 타인의 행동으로 유발된 고통, 타인이 그 행동을 고치지 않는 상황에서, 행복을 위한 마음 바꾸기는 '호구인증', '자기파괴', '가해자 지우기' 아닐까?

법륜을 따르는 사람들도 그런 점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뱀발>

여성신문, 오마이뉴스에 '아버지 성폭행 즉문즉설'이 2013년 2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적고 있는데, 스크랩된 날짜, 결정적으로 정토회 페이스북에 남은 게시물(2011년 10월 5일), 부산 벡스코 즉문즉설을 홍보하는 부산일보 기사를 토대로 보면, 해당 즉문즉설이 이루어진 것은 2011년 9월 30일로 보인다. 장소는 부산 벡스코.